시로 여는 일상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22, 23

생게사부르 2017. 6. 14. 08:06

이성복

 

22.
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속에 있지 않다
사람이 사랑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목 좁은 꽃병에
간신히 끼여 들어 온 꽃대궁이
바닥의 퀘퀘한 냄새 속에 시들어가고
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있다


23.
오늘 아침 새소리



병이란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것
사람들은 그리워서
병이 나는 줄 알지 그러나
병은 참말로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는 것

오늘 아침 새소리
미닫이 문틈에 끼인 실밥 같고,
그대를 생각하는 내 이마는
여자들 풀섶에서 오줌 누고 떠난 자리 같다

 

- 아, 입이 없는 것들. 2003.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