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의 기록/이웃지역 진주, 지리산 부근

근대 문화유산 진주역 차량정비고

생게사부르 2017. 5. 6. 02:08

 

근대 문화유산 진주역 차량정비고

 

 

어릴 적 마산서 기차를 타고 진주역에 내리곤 했다. 칠암동 파출소 골목으로 들어가 큰 집을 찾아가는데

 좀 길치라 잘 찾아갈 수 있을까? 하고 갈 때마다 긴장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기다란 복도 실내 끝에 화장실이 있던 적산가옥이었던 큰 집은

지금은 문화예술회관으로 들어갔는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봉건사회를 벗어나는 19C 이후 건축물들이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에 들어가는 시점이다.

 

그 시기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서구세력과 자천타천 조약을 맺게 된 이후 물밀듯이 들어오는

서구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건축물들로 주로 등록 문화재에 속하는 것들이다.

 

문화재 종류는

1. 국가문화재: 국보, 보물, 사적, 명승지, 천연기년물, 중요 무형문화재, 민속문화재

2. 시도 지정 문화재;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

3. 문화재 자료

4. 등록문화재

5. 비지정문화재: 일반 동상문화재, 매장문화재로 나눈다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건설, 제작 형성된 이후 50년 이상 지난 것으로 다음에 해당 할 경우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할 경우 등록문화재로 분류하여 보호를 받는다.

 

* 역사, 문화, 예술, 종교, 경제, 사회 생활 등 각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

* 둘째 지역의 역사, 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으며, 그 가치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것

* 기술발전 또는 예술적 사조 등 그 시대를 반영하거나 이해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긴급한 조치가 필요할 경우에는 50년 이상이 지나지 아니 한 것이라도  등록문화재로 등재 가능한데

근대 시기의 등록문화재 대상 대부분은 100년을 넘기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본 적이 있는 건축물들이 의외로 등록 문화재인 경우가 많다

봉암저수지, 통영군청(149호)과 해저터널, 창녕 남지철교(145호), 진해 역사(192호)와 우체국 등 근대시기의

역사현장이나 근대 교육기관, 교통기관 등 건축물이 주를 이루고 그외 영화 필름, 전화기 안경등 그 대상이 다양하다.

 

근대도시로서의 특징을 잘 살려 그 의미를 재현해 내면서 최근 각광받는 관광도시가 된 곳은 군산이다

그러나 지자체에 따라 그 인식정도가 달라 바람직하게 보호조치가 이루어 지는 곳이 있는 반면

 방치되어 그 주변이 오물이나 쓰레기 처리장처럼 되고 있는 곳도 있다.

 

작년부터 매주 진주를 드나들었는데 진주의 근대 문화유산으로는 문산 성당과 옥봉성당이 있고

진주역 차량정비소, 배영초등학교 건물 들이 근대 문화유산에 해당한다.

 

특히 진주역 부근은 매주 지나 다니는 곳인데 그 주변에 농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렇다치고

차량정비소 부근의 지저분한 환경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어쩔수 없는 전직 역사교사 ㅠ

 

 

 

 

 

 

 

벽면에 6.25 전쟁 당시 총탄자국이 보인다

 

 

진주역 차량정비고: 등록 문화재 제 202호

 

1923년 마산-진주를 잇는 경남선 개통과 함께 1925년 건립된 진주역에 역이 세워질 당시 함께 건립된

차량정비고는 당시 진주가 서부 경남지역의 인적, 물적 수송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하는 건물로써 의미가 있다.

 

 

 

 

 

 

건너편에는 차량 점검을 하던 장소가 남아 있는데 주변에는 주민들이 빈 공간을 활용해 농사를 짓고 있고,

역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도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그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사단법인 표지 안내문이 있고

 

 

 

 

당시 총탄자국도 남아 있고

 

 

 

 

 

 

주변에는 누가 버렸는지, 쓰레기 음식물 찌거기들로 지저분하다.

 

 

 

이전의 탄광에 와인 저장고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음악회가 열리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유럽 선진국에서 폐허가 된 공간을 카페나 레스토랑 혹은 역사, 문화공간으로 재활용하여 의미를 살리고

있는 경우들과 비교가 되면서

 

공무원들이 직접 하지 못하면 시민들에게 아이디어를 받고 시민들이 직접 관리도 할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정책 프로젝트가 개발되어 역사적 의미를 지닌 문화재가 이런식으로 방치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빈 공간에 심어 놓은 꽃들이 간혹 행인들의 발목을 잡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에 화보처럼 보일 수 있는지 몇 군데 방향을 잡아 사진을 찍어 보기도 했다.

 

 

 

 

 

 

 

 

 

 

 

진주교육지원청 뒷편에 있는 진주공립심상 소학교 교사건물 역시 등록 문화재 582호다.

을사조약 이후 통감부의 보조를 받아 1908년 개교한 진주 최초의 일본인 학교였고, 해방이후에도

진주공립학교(이후 배영초등학교)로 진주지역 학생들의 기초교육을 맡아 그 역할을 이어 내려 왔지만 지금은

폐쇄된 채 굳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 참고: 조선은 1876년 문호 개방에 대한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과 불평등하게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고,

이를 계기로 강압적인 태도로 문호를 개방을 요구해오던 미국(1882년), 영국(1882년), 독일(1882년), 러시아(1884년)

이탈리아(1884년), 프랑스(1886년) 등 서양의 강대국들과 차례로 통상 조약을 맺었다.

갑작스레 문호가 개방되면서 급물살을 타며 거침없이 흘러들어온 서구의 문화와 문명은 500년 왕조 사회를 유지해 온

조선 사회에 상당한 충격이면서 동시에 생각이나 생활방식에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격변의 흐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