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실상사와 백장암
전북 남원에 있는 실상사를 처음 가보게 된 건 대학시절 답사에서였습니다.
역사과의 방학은 기말 시험을 치른 후, 정기답사를 다녀와야 시작되었으니까요.
1977-1980년 시기니 지금처럼 도로가 쭉쭉 뚫여 있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전라도 지역으로 들어가면 길을 잘 못 잡았다가 되돌아 나오기 일쑤던 시절이었지요.
실상사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환상이었습니다.
버스에서 철다리를 건너 들어갔는데 그때가 여름이어서 다리아래로 물이 많이 흘렀고, 무엇보다
산 속이 아닌 들판가운데 평지절이라 다른 절과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절 마당에 들어섰을 때 쌍탑이 반겨주던 일도 인상에 남아 있고요.
그 이후 실상사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한 해는 지리산을 돌면서 마음먹고 계획했는데 눈이와서 통제가 되어 포기하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함양에 근무하던 때,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함양에서 25㎞ 남짓 거리였거든요.
짝지와 함께 한번 갔고, 그 후 워싱턴 DC서 인턴 생활하다가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준비차 나왔던 딸과 함께 또 한번 들렀습니다
다시 갔던 시기가 5,6월경에 한번, 배롱나무가 한창 꽃을 달고 있던 7-8월 경에 또 한번인 것 같은데
그마저 이미 5년전이네요. 이즈음 세월은 장전된 화살 지나가는 듯 합니다.
실상사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지리산 천황봉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17교구 본사인
금산사 말사인데 절의 역사가 긴 만큼 그 내력 또한 깁니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828년)에 홍척이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되었네요.
홍척은 도의(道義, 道儀)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禪法)을 깨우친 뒤 귀국 한 뒤,
도의는 장흥 가지산에 들어가서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 절을 세운 뒤 선종(禪宗)을 전파하였는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건립하였고 그 뒤 2대조 수철(秀澈)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서
절을 크게 중창하고 선풍을 더욱 떨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1468년(세조 14)에 화재로 모두 불타버린 후 200년 동안 폐허로 남았고, 승려들은 백장암(百丈庵)에
기거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679년(숙종 5)에 벽암(碧巖)이 삼창(三創)하였고,
1684년 계오(戒悟)가 현재의 극락전(極樂殿)인 부도전(浮屠殿)을 지었습니다.
1690년에 침허(枕虛)를 중심으로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웠고,1821년에는 의암(義巖)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1882년(고종 19)함양 출신
양재묵(楊載默)과 산청 출신 민동혁(閔東赫)에 의해 사찰건물들이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으며,
1884년에 월송(月松) 등이 중건하였고 1903년(광무 7) 익준(益俊)이 승당을 지었으며, 1932년 칠성각을 세웠습니다.
특히 불상에는 보화(寶貨)가 많이 들어 있다 하여 일찍이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된 적이 있었는데 그 불상의
복장(腹藏)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문(願文)과 사경(寫經) 및 인경(印經)이 수백 권이나 들어 있었고,
고려판 화엄경소(高麗板華嚴經疏) 등 보기 드문 서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일부는 도난당하였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타 버렸다고 하네요. 1986년 요사로 사용 중인
선리수도원(禪理修道院)을 건립하였고, 1989년 천왕문을 세웠으며 1991년 범종각을 짓고,
1996년 화엄학림(華嚴學林) 강당과 학사를 건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약사전·명부전·칠성각·선리수도원·누각·천왕문·
화엄학림강당과 학사,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극락전과 부속 건물이 있습니다.
당우 가운데 보광전 안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비로자나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베트남에서 이운해 왔다는 종이로 만든 보살입상이 있고, 범종이 걸려 있습니다.
1694년(숙종 20)에 만들어진 종은, 종을 치는 자리에 일본의 지도 비슷한 무늬가 있어 이것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떠돌아서 일제 말기에는 주지가 문초를 당하기도 하였답니다.
실상사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
실상사와 백장암을 통틀어 국보 1기와 보물로 지정된 11기의 중요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백장암삼층석탑이 국보(제10호)이며 수철화상능가보월탑(實相寺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3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보물 제34호), 석등(보물 제35호), 부도(보물 제36호), 삼층석탑(보물 제37호) 2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증각대사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 보물 제38호), 증각대사응료탑비(보물 제39호),
백장암석등(보물 제40호), 실상사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 백장암청동은입사향로(百丈庵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0호), 실상사약수암목조탱화(實相寺藥水庵木彫幀畵, 보물 제421호) 등이 있고요.
또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1832년에 의암이 중건하면서 부도전에서 극락전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지불(紙佛)인
아미타여래좌상과 1985년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중 실상사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으로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이 탑을 본떠 복원하기도 하였습니다. 1980년 2월 2일 도굴꾼에 의하여 크게 파손된 것을
문화재관리국의 기술진들이 원형대로 복원하였고,
또한 약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은 수철이 4,000근의 철을 들여 주조한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입니다. 이 불상은 현재 지리산 최고봉인 천황봉과 일직선상에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기를 일본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호국적 이념에서 이곳에 안치했다고 하네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삼층석탑인데 탑신보다는 상륜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네요.보통 피뢰침 처럼 쇠만 남아 있고 상륜부 원형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잘 없거든요
이 밖에도 절에는 실상사위전개량성책(實相寺位田改量成冊,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8호)이 있으며,
절 입구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중요민속자료 제15호)을 비롯한 석장승들이 남아 있어 장승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며 절 일원이 사적 제30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최근의 실상사는 1998년에 문을 연 귀농학교로도 유명한데 당시 주지스님이었던 도법스님이 만든 학교로서
1997년 우리나라에 IMF로 인해 실직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농촌으로 돌아와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와 모든 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생태환경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데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토피가 너무 심해 학교생활에 지장이 있는 친구들을 도와 주기위한 방법을 찾다가 실상사에서 음식과
생활습관을 통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좁은 식견이지만
사찰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활동으로 여긴적이 있었습니다.
[Daum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일부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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