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조은 흐린날의 귀가, 문고리

생게사부르 2017. 4. 25. 07:27

조은


흐린날의 귀가


친구가 내 집에다
어둠을 벗어 두고 갔다
점등된 등불처럼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어둠이 따라붙지 못한 몸이
가뿐히 언덕을 넘어갔다

사는게 지옥이었다던
그녀의 어둠이 내 눈 앞에서
뒤척인다 몸을 일으킨다
긴 팔을 활짝편다
어둠이 두 팔로 나를 안는다
나는 몸에 닿는 어둠의 갈비뼈를 느낀다
어둠의 심장은 늑골 아래서
내 몸이 오그라들도록
힘차게 뛴다

나는 어둠과 자웅동체처럼 붙어
어딘가를 걷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경쾌하던 그녀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표정이 바뀐다
또 한 숨 한 숨 힘겹고
눈앞이 흐려진다


문고리

 

 

삼년을 살아 온 집의

문고리가 떨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고 닫았던 문

헛헛해서 권태로워서

열고 닫았던 집의 문이

벽이 꽉 다물렸다

문을 벽으로 바꿔버린 작은 존재
벽 너머의 세상을 일깨우는 존재

문고리를 고정 시켰던 못을 빼내고

삭은 쇠붙이를 들여다 보니

구멍이 뻥 뚫린 해골처럼 처연하다

언젠가 나도 명이 다한 문고리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이다

나라는 문고리를 잡고 열린 세상이

얼마쯤은 된다고 믿을 수 있다면 !

내가 살기 전에도

누군가가 수십년을 살았고

문을 바꾸고도 수십년을 살았을 이 집에서

삭아버린 문고리

삭고 있는 내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