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하재연 안녕, 드라큘라

생게사부르 2017. 4. 25. 23:59

하재연


안녕, 드라큘라


당신이 나를 당신의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면
나는 아이의 얼굴이거나 노인의 얼굴로
영원히 당신 곁에 남아
사랑을 다할 수 있다.
세계의 방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햇살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살아 있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은 당신의 소년을 버리지 않아도 좋고
나는 나의 소녀를 버리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세계의 방들은 온통 열려 있는 문들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고통스럽다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이 나를 당신에게 허락해 준다면
나는 순백의 신부이거나 순결한 미치광이로
당신이 당신임을
증명 할 것이다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낳을 것이고
우리가 낳은 우리들은 정말로
살아 갈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처음 내는 목소리로
안녕, 하고 말해 준다면.
나의 귀가 이 세계의 빛나는 햇살 속에서
멀어버리지 않는다면.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문학과 지성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