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언주
관계
비둘기 그림자는, 비둘기 곁에서 콘크리트 바닥을 쪼아댄다. 제법 곁눈질이 늘어 비둘기보다 큰 부리로 비둘기보다 더 깊이
바닥의 침묵을 흠집낸다. 기회를 보아 비둘기를 생포 할 자세다. 그러나 비둘기가 날아 오르면 제 아무리 큰 보폭으로 쫒아가도
얼마 못가 비둘기의 속도를 놓쳐 버린다
꽃이 꽃을 버리는 줄 모르고 꽃 그림자는, 홀로 취해 제 향기를 날린 적이 여러번 있다
<4월아 미안하다>. 2007. 민음사
오후 3시
사등분된 파이의 한 조각
먹음직스러운 오후의 중심
그 찬란함
상대가 보여주는 몸짓에 맞춰 '그림자'로 따라 다니는 관계 맺기의 여정
꼬깃해진 자존심 접고 비굴하게 엎드려야 하기도 하고 입 안의 혀처럼 나를 버리고 상대에 맞추기도
하지만....어느순간 '그림자' 처럼 스스로의 자세에 홀로 도취해 만족해 했을뿐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음을 알게된다
'우리'로 묶였다고 생각 했던건 착각 일뿐 함께였다고 생각한 자리엔 남아 있을게 별로 없다
'우리'랄 것도 없었다 상대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그림자
그림자만이 있었을 뿐
'그림자' 처럼 어두침침한 색으로 상대를 따라가며 흉내만 내었을 뿐
잘하고 있다며 스스로의 모습에 흠뻑 취해 있었을 뿐
그러니 상대가 떠난 자리에 빛이 들어도 그림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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