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해
백주대낮에 여자들이 칼을 들고 설치는 이유
이 시절에는요
여자들이
시렁 위에 얹힌 작지만 앙칼진 칼
하나씩 손에 들고 나오는데요
여자들이 칼을 들고 설쳐도 암말 못하는 건
지천에 내걸린 풋것들을 오살지게 베어다
서방과 새끼들을 거두기 때문인데요
이 시절에는요
세상 모든 여자들은 코밑이 거뭇해지고
팔뚝 속에 알이 차 올라서는
지천에 돋는 풋것들이 아까워라, 아까워라
저도 모르게 들판과 한판 엉겨붙게 되는데요
난생 처음 억세디억센 수컷이 되는데요
가끔씩 그 독한 칼날에
논배미가 잘리고 칡뿌리가 잘리고
수맥이 잘리기도 하는데요
이 시절 여자들은요
푸줏간 안주인이 내걸린 고기들을
슥슥 잘라가듯
이 나무 이 바람 이 구름을
훌훌 베어 망태기에 담아서는
종다리처럼 지저귀며
언덕을 넘어가는데요
하늘도 암말 못한다는데요
< 입술을 건너간 이름> 창비
먼저 온 신발
신발장에 다섯 살배기 신발들이 가득하다
아이 발이 크면 신기려고 이웃이나 친척에게 얻어온 것들이다
아이 발은 예나 지금이나 손바닥만한데
앙보다 미리 건너온 신발이여
누가 강물에 그것을 조각배처럼 하나씩 흘려보냈을까
이 앙증맞은 집의 거죽을 조금씩 조금씩 늘리며
커갔을 작고 붉은 발들이여
크나큰 밤낮과
휘몰아치는 눈비와 바람을 담고
지금은 고요히 출항이 정지된 조각배들을 보고 있으면
한낮이 참 잔잔한 강물 같다
이 고요한 조각배들을 펄떡이는 가물치로 만들어줄
아이 아이 발을 기다리는 일은
조금씩 보름달에 살이 차오르는 것을 다만 지켜보는 것과 같다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은 흐린날의 귀가, 문고리 (0) | 2017.04.25 |
---|---|
심언주 관계, 오후 3시 (0) | 2017.04.23 |
신용목 산수유꽃 (0) | 2017.04.22 |
문성해 각시투구꽃을 생각함 (0) | 2017.04.20 |
D.H. 로런스 제대로 된 혁명 (0) | 2017.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