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입술들
입술만 모여 있다
자갈 물려
보쌈당한 듯 앉아 있다
입술 열 때마다 속을 보인다고
으깨지고 짓이김 당한 시간은
굴곡져 있다
움츠러든 몸
포갤 수도 펼쳐 보일 수도 없어
마음만 부풀리고 있다
불안으로 피는 꽃
터트리지 못해
억지웃음 짓고 있다
유곽을 찾아 헤매는 밤안개처럼
열이 오르는 입김
만두들이
입술을 뾰루퉁하게 내밀고 있다
납골당
도서관 서고에 들어서면 서늘하다
혼령들 탓이다
작가의 죽은 문장을 보관한 진열장을
잉크빛 그늘이 덮고 있다
부서진 활엽수는 활자를 움켜쥐고
어제의 숲을 기억하며
소장번호를 붙이고 다시 일어섰으나,
아무도 찾지 않는 영정 사진처럼
바래져가는 책 표지와
묘비명 뒤에 적힌 이름으로
잊혀져 가는 도서 목록들.
슬픔은 재가 되다 멈춰
꽃을 피울 수도
가벼이 날 수도 없는
시간들을 내리 누르고 있다
나는 가끔씩 조문하듯
칸칸마다 꽂혀 있는
묵은 영혼을 둘러본다
충남공주, 2001<시문학> 등단
시집: ' 몸 속에 시계를 달다' ' 햇살 마름질'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이정 보름풍경 - 향수- (0) | 2017.02.11 |
---|---|
김선호 그늘의 소유권 (0) | 2017.02.09 |
길상호 아무것도 아닌밤, 마네킹 나나 (0) | 2017.02.06 |
길상호 기타고양이, 우리의 죄는 야옹 (0) | 2017.02.05 |
이성부 봄, 최영미 어쩌자고 (0) | 2017.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