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윤이정 보름풍경 - 향수-

생게사부르 2017. 2. 11. 21:54

윤이정

 

 

보름풍경

           -향수-


"잠자면 눈썹이 하얘진단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방죽을 돌아다니던

아버지

멀리선 서로 모르는 소년들의

구멍난 깡통불들이 보름치 송진을

태우며

달님보다 더 크게 돌고

안 잔다 안 잔다 해도

어느새 잠든 새벽 잠결

웃목에 차려진 상은 보기만해도

맬겁시 따뜻하게 배가 불렀다

"뚜부장국을 먹어야 진짜로 한 살 더

먹는단다"

살얼음진 식혜에

김으로 돌돌만 찰밥 베어물고

하릴없이 장독대로 뒤란으로 서성이면

무겁게 내려앉은 눈이 녹아

툭툭 떨어지고

해산한 듯 댓잎은 가볍게 떨며

아침 햇살에 물기를 반짝였다

고드름 떨어져 깨지는 소리엔

뒷 텃밭 산꿩이 꿩!하고 날아오르고

대숲옆 묵정밭엔

냉이가 납작 엎드려 봄도둑잠을 잤다

 

 

*      *      *

 

 

아이 적엔 그렇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아이는 접시만 깨도 집안이 시끄러운데

어른은 장독을 깨고도 그냥 넘어가는

혹은 나이가 많아야 대접 받는 ' 장유유서'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성숙함과 신중함이 요구된다는 말일까?

나이 한 살 더 먹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동지 팥죽 새알을 먹어야 나이 먹는다 하고

설날, 새배를 하고 떡국을 먹어야 나이 더 먹는다 하고

보름날 뚜부장국까지 먹어야 비로소 나이가 한살 더 먹는다고 하니

 

요즘은 그런 절차 거치지 않고 너무 쉽게 한살을 더 먹어서

그렇게 정서적으로 미숙한 성인이 많은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