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정
보름풍경
-향수-
"잠자면 눈썹이 하얘진단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방죽을 돌아다니던
아버지
멀리선 서로 모르는 소년들의
구멍난 깡통불들이 보름치 송진을
태우며
달님보다 더 크게 돌고
안 잔다 안 잔다 해도
어느새 잠든 새벽 잠결
웃목에 차려진 상은 보기만해도
맬겁시 따뜻하게 배가 불렀다
"뚜부장국을 먹어야 진짜로 한 살 더
먹는단다"
살얼음진 식혜에
김으로 돌돌만 찰밥 베어물고
하릴없이 장독대로 뒤란으로 서성이면
무겁게 내려앉은 눈이 녹아
툭툭 떨어지고
해산한 듯 댓잎은 가볍게 떨며
아침 햇살에 물기를 반짝였다
고드름 떨어져 깨지는 소리엔
뒷 텃밭 산꿩이 꿩!하고 날아오르고
대숲옆 묵정밭엔
냉이가 납작 엎드려 봄도둑잠을 잤다
* * *
아이 적엔 그렇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아이는 접시만 깨도 집안이 시끄러운데
어른은 장독을 깨고도 그냥 넘어가는
혹은 나이가 많아야 대접 받는 ' 장유유서'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성숙함과 신중함이 요구된다는 말일까?
나이 한 살 더 먹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동지 팥죽 새알을 먹어야 나이 먹는다 하고
설날, 새배를 하고 떡국을 먹어야 나이 더 먹는다 하고
보름날 뚜부장국까지 먹어야 비로소 나이가 한살 더 먹는다고 하니
요즘은 그런 절차 거치지 않고 너무 쉽게 한살을 더 먹어서
그렇게 정서적으로 미숙한 성인이 많은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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