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성부 봄, 최영미 어쩌자고

생게사부르 2017. 2. 4. 10:24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물 웅덩이 같은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팔벌려 껴 안아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 우리들의 양식' 민음사. 1974





어쩌자고 / 최영미



날씨 한번 더럽게 좋구나
속 뒤집어 놓는, 저기 저 감칠 햇빛
어쩌자고 봄이오는가
사시사철 봄처럼 뜬 속인데
시궁창이라도 개울물 더 또렷이
졸졸
겨우내 비껴가던 바람도
품속으로 꼬옥 파고 드는데
어느 환장할 꽃이 피고 또 지려하는가

죽 쒀서 개 줬다고
갈아엎자 들어서고
겹겹이 배반당한 이 땅

줄줄이 피멍든 가슴들에
무어 더러운 봄이 오려하느냐
어쩌자고 봄이 또 온단 말이냐

 

 

*        *        *

 

 

입춘입니다.

 

좀더 희망적인 봄 시를 올려야 하는

여전히 이성부, 최영미 시를 올리게 됨을 용서하세요.

내년 봄에는 좀더 상큼하고 젊은 봄시를 올릴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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