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밤 / 길상호
골목 귀퉁이 볼록거울에서
눈깔도 없는 고양이가 줄지어 태어난다
유리가 박힌 담장위 줄장미는
검게 탄 입술을 뜯다 피를 본다
죽은 별들의 무덤을 파헤쳐 놓고
빛나는 눈물을 연습하는 밤
핏줄 구석구석 병든 고양이가 울고
손금 사이사이 썩은 장미가 피어난다
벽장 속 가장 컴컴한 그림자를 꺼내
나는 서둘러 얼굴 표정을 덮는다
지옥에 먼저 보내 놓은 내가
오늘은 더 아프게 몸을 뒤척인다
마네킹 나나
비가 막 그친 새벽이에요. 오늘은 쭈그려 앉아 낙엽을 토
하던 플라타너스도 없어요. 대신 유리에 맺힌 빗방울들이
가로등 불빛으로 반짝, 반짝, 눈을 깜빡이네요. 빗물로 만들
어진 눈동자가 하는 말을 사람들은 들어본 적 없을거예요.
그 비릿한 맛의 눈빛을 읽을 수 없을 거예요. 나는 뻑뻑한
팔을 뻗어 빗방울을 하나씩 집어 눈 속에 넣어요. 빗물의 눈
동자가 안약처럼 스미면, 혹여 슬픔을 느낄 수도 있을까 해
서요. 하지만 눈물샘이 없는 눈에는 비의 눈빛이 고이지 않
아요. 매번 흘러 내리고 마는 빗방울에 블라우스 앞섶만 축
축하게 젖어요. 누군가 나를 벗겨간다면 정체를 알수 없는
비린내 때문에 한동안은 앓을 거에요. 바람도 무겁게 젖은
새벽, 한방울로 흘러 내릴수 없는 나는 관절마다 삐걱대며
유리의 방에 또 갇히고 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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