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길상호 아무것도 아닌밤, 마네킹 나나

생게사부르 2017. 2. 6. 13:52

아무것도 아닌밤 / 길상호


골목 귀퉁이 볼록거울에서
눈깔도 없는 고양이가 줄지어 태어난다

 

유리가 박힌 담장위 줄장미는

검게 탄 입술을 뜯다 피를 본다

 

죽은 별들의 무덤을 파헤쳐 놓고

빛나는 눈물을 연습하는 밤

핏줄 구석구석 병든 고양이가 울고

손금 사이사이 썩은 장미가 피어난다

 

벽장 속 가장 컴컴한 그림자를 꺼내

나는 서둘러 얼굴 표정을 덮는다

 

지옥에 먼저 보내 놓은 내가

오늘은 더 아프게 몸을 뒤척인다

 

 

 

 

마네킹 나나

 

 

 

비가 막 그친 새벽이에요. 오늘은 쭈그려 앉아 낙엽을 토

하던 플라타너스도 없어요. 대신 유리에 맺힌 빗방울들이

가로등 불빛으로 반짝, 반짝, 눈을 깜빡이네요. 빗물로 만들

어진 눈동자가 하는 말을 사람들은 들어본 적 없을거예요.

그 비릿한 맛의 눈빛을 읽을 수 없을 거예요. 나는 뻑뻑한

팔을 뻗어 빗방울을 하나씩 집어 눈 속에 넣어요. 빗물의 눈

동자가 안약처럼 스미면, 혹여 슬픔을 느낄 수도 있을까 해

서요. 하지만 눈물샘이 없는 눈에는 비의 눈빛이 고이지 않

아요. 매번 흘러 내리고 마는 빗방울에 블라우스 앞만 축

축하게 젖어요. 누군가 나를 벗겨간다면 정체를 알수 없는

비린내 때문에 한동안은 앓을 거에요. 바람도 무겁게 젖은

새벽, 한방울로 흘러 내릴수 없는 나는 관절마다 삐걱대며

유리의 방에 또 갇히고 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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