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진규 대화

생게사부르 2017. 2. 2. 09:32

김진규


대화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마리가 구겨져있다
다물어지지 않는 부리 위를 기어다니는 어두운 벌레들
작은 구멍에 다 들어가지 않는 꺾인 날개가
누군가가 억지로 밀어 넣은 새의 몸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나도 분명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았던 것들의 속을 채워보기 위해
아귀가 잘 맞지 않는 열쇠를 한번 밀어 넣어 보듯이
혼자 날아가지도 못할 말들을 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둥근 머리통을 한참 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이쪽의 눈과 저쪽에 있는 새의 눈이 마주치자,
여태껏 맞아본 적 없는 햇빛이 머리위로 쏟아진다
머리통이 간지러워져서,
나도 어딘가 머리를 드밀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방에서 방으로 옮겨갈 때의 걸음을 생각해보니
나는 언젠가 이곳과 저곳의 국경을 넘는 사람인 거 같아
누워 있는 사람의 말을 대신 전할 때
구겨진 새의 몸을 손으로 감싸서 누구한테 내밀 듯
나도 어떤 말인지 모를 말들을 했던 것 같아
새의 부리가 날보고 웅얼거리는 것 같아서
내 귀가 어쩌면, 파닥거리다가 날아갈 것 같아서
나무 옹이를 나뭇가지로 쑤신다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삼키지 못할 것들을 밀어 넣듯이 밀어 넣는다


     - 2014. 한국일보 신춘문예당선작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성부 봄, 최영미 어쩌자고  (0) 2017.02.04
성윤석 쑥  (0) 2017.02.03
정용화 집중의 힘  (0) 2017.02.01
신철규 샌드위치맨  (0) 2017.01.31
이상국 쫄딱, 양선희 어린것들  (0) 2017.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