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정용화 집중의 힘

생게사부르 2017. 2. 1. 00:49

정용화


집중의 힘



  알고보면 꽃은 계절이 불러 모은 허공이다. 지상을 향한 땅의
집중이다. 흩어지는 것이 거부의 형식이라면 피워내는 것은 모서
리를 견뎌낸 침묵의 힘이다.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나무는 땅 속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에 집중한다. 상처가 있
던 자리마다 꽃이 피어난다. 꽃은 어둠 속에서 별이 떨어뜨린 혁명
이다. 꽃으로 피어 있는 시간,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 날개에 집중한다. 나무는 얼마나 많은 새들의 울음을
간직하고 있을까. 온 몸이 귀가되어 집중할 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때로는 어긋난 대답처럼 꽃 진 자리마다 잎새 뒤에 숨어서 가
을은 열매에 집중한다. 알고보면 열매는 화려한 기억들을 끌어 모
아 가을을 짧게 요약한다

  세상에 집중없이 피어난 꽃은 없다고
  너는 우주의 집중으로 피워낸 꽃이다


- 나선형의 저녁. 애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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