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상국 쫄딱, 양선희 어린것들

생게사부르 2017. 1. 30. 00:30

쫄딱 / 이상국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부려 놓고
골목을 빠져 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사람들 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 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살 쯤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 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넉넉해지며

그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게
이렇게 근사하고 당당 할 줄이야

 

 

 

 

어린 것들/ 양선희

 

 

 

흰 목련 꽃을

엄마, 여기 조개꽃이 피었어!

밥물이 끓어 넘친 자국을

엄마, 여기 눈이 내렸어

 

벚꽃이 지는 걸

엄마, 바람이 꽃을 아프게 하는 거야?

좋은 냄새를

엄마, 이게 꽃이 피는 냄새야?

 

겁도 없이

 

5년

10년

일생이 걸려도

내가 못 가는 거리를

 

단숨에!

 

 

 

*     *     *

 

 

' 쫄딱 망해'서 시골로 이사를 왔단다

부모가 들었으면 참으로 기가 차고, 아이들 앞에서 말조심 해야겠단 생각도 들테지만

참으로 당돌하고 '겁 없는' 아이들의 솔직한 시선, 동화적 발상

 

딸도 그랬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할머니께서 아침에 일어나시자마자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셨다

막 눈 비비며 일어난 딸이 호스로 물 주는 모습을 보며 한 말,

 

" 할머니 꽃 세수 시켜요?"

 

' 어? 어! 꽃도 세수를 해야지..." 

 

할머니는 손녀의 그 말을 금방 알아들으셨다

 

어른이 되는 동안 잃어버린 동심

아이들은 집단생활에 들어가는 순간 규칙과 규격에 구겨져 들어간다

 

학교 근무하면서 학교가 아이들의 창의성을 길러 주기는커녕

제 각각 지닌 색깔을 없애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내 사로잡혀 있었다

특히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을 강요하는 한국적인 교육 현실에서는...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사회도 자유스러운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북돋워서

좀 더 다양한 색깔 있는 사회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

이미 개성이나 독창성이 능력이 되는 사회이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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