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백석 여우난골족

생게사부르 2017. 1. 28. 13:37

백석


여우난골족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 할머니 진 할아
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 나무가 많은 신리新理고모 고모의
딸 이녀李女 작은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
는 토산土山 고모 고모의 딸 承女 아들 승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
은 큰골 고모 고모의 딸 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 사촌 누이 사
촌 동생들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기떡 콩가루찰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
물과 볶은 잔대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
이다

  저녁 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옆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
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
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랫간에서들 웃고 이야기
히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
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대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계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
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든다 그래
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서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얶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
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여우난곬족 전문: 여우가 나는 골짜기에 모여사는 일가친척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

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

쌍하게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시집『사슴』 193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