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자아성장

더 이상 늦은 때란 없다(3)

생게사부르 2017. 1. 31. 16:51

더 이상 늦은 때란 없다 (3)

 

 

98세에 글 쓰는 짐 헨리

 

 

뒤늦게 글을 배워 `어부의 언어' 수필집을 발간한 포르투갈 태생의 미국인입니다

바닷가재 조업선 선장, 제임스 아루다 헨리는 자랑할 일이 많습니다.

 

자기 손으로 집을 지었고 가족도 부양합니다. 그런 그에게도 90살이 넘도록 숨기고 살아야 할 비밀이 있었고

그 때문에 밤에는 홀로 눈물까지 흘리곤 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는 글을 읽을 줄 몰랐습니다. 식당의 차림표 조차 못 읽었지요.

음식점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주문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은 것을 달라고 하거나 때로는 도움을 받기 싫어서

아예 식당에 가지 않고 끼니를 거르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족 거의 전부가 그보다 별로 낫지 않았습니다.

운전면허 시험 응시서를 작성할 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름을 적어 넣는 것 뿐이었지요.

 

한 친구가 시험관에게 "이 친구가 여기 바닷가재 왕"이라고 말해 준 덕분에 응시서도 쓰지 않고 바로

주행시험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가 98세에 써 자비로 출판한 자전적 수필집이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읽히고 있습니다.

"어부의 언어"라는 이 수필집은 포르투갈에서 맨몸으로 시작한 그의 인생,

로드 아일랜드 셋집과 바다에서의 삶을 꼼꼼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는 코네티컷주의 항구도시 미스틱에서 "일이 이렇게 까지 될 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읽는 것 따위는 전혀 할 수 없었는데 이제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와 편지 같은 것을

써달라고 할 때 마다 매우 기쁘다"고도 말했습니다.

평생 그는 읽고 쓰기를 배우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나 시간을 찾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런 그에게 98세에 읽기를 하게 된 동기는 한 노예의 손자를 다룬 책이 계기가 됐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좋다"는 조지 조슨의 책으로 헨리는 당시 "그가 했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배우기 시작했고 밤늦게 까지 단어의 뜻을 공부했습니다.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모르는 단어나 의미를 모르는 말 때문에 울었던 날도

많았다." 처음에는 독학을 하다가 이후 아동용 사전을 이용하게 되고

다음에는 친척과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옆에서 손녀가 거들었습니다.

 

자원봉사로 글을 가르치던 마크 호건(69)씨에게 배우기 시작하던 2010년에는 느리지만 읽을 수 있는

단계로 들어 갔습니다.

호건은 당시 헨리가 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드러냈을 때 "압도됐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그가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을 보고 나이 드는 데 대해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것도 보상을 받는 듯한 기분"

이었다고 호건은 덧붙였습니다.

 

헨리의 고손녀 맥신 스미스는 한 손녀가 이 책을 일종의 연애편지처럼 보내 전국에 퍼지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귀띔했습니다.

 

코네티컷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보낸 이 책 한 권이 30일에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한 초등학교에 도착합니다.

 

책은 지난해 11월에 출판된 이후 3천권이 팔렸고 아마존의 전자책 서비스인 킨들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고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말합니다.

"어렵지만 요령을 터득하면 즐기게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사인을 받기위해 백악관에도 한 부 보냈지만 답신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헨리는 고기잡이 하러 함께 나갔다가 배에서 바다에 떨어져 사망한 사촌의 사고 당시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놓기도 합니다.

 

"나는 침대에서 3주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저 죽고 싶었다. 아내가 내 실수가

아니라고 계속 말했다. 나는 그를 구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두 딸을 함께 두었던 아내 진은 2005년 세상을 떠났고 그는 지금 아이들과

성인을 위한 독서운동가로 활동 중이며 이번 주에는 미스틱의 성인교육대회에서 강연도 할 예정입니다

 

 

*       *       *

 

 

2012년 기사였으니 이분의 생존을 확인 할 정보를 찾지 못했습니다만

돌아 가시는 날까지 의욕과 열정에 찬 생활을 보내셨으리라 짐작됩니다.

 

이전에 ' 검정고시' 감독을 가 본적이 있었습니다.

수험생들의 연령대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습니다.

다들 어떤 사연들인지 모르겠지만 정규고등학교가 아닌 과정을 거쳐

학업을 계속 진행해 보려는 분들, 제가 들어 간 반은 고등학교 졸업자격반이었으니

대학진학을 해 보겠다는 의지를 지닌분들이었습니다.

 

실업계 학교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가 다시 학업을 계속하겠다는 20대는 그렇게 특별 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회사 생활을 10-20년씩 하다가 대학진학을 해 봐야겠다는 40대 아저씨

감독 중 당시 30대인 저와 눈이 부딪쳐 겸연쩍게 웃으시던 남자분 생년월일을 봤더니 60이 넘으신분이었습니다.

 

첫시간 도덕과목에는 그나마 한명 수험생이 지각을 해서 한 사람을 두 사람이 감독하기도 했고

쉬는 시간 답안지를 거둬 가는 중 복도와 계단에서 다음 시간 준비를 하고 있는 머리 희끗희끗한 분들,

계단에 앉아 계시던 중년여성분이 들여다보고 있는 공부가 '국사'과목이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회과목은 아무리 이해를 해도 기본 줄기 일부는 외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것임을 잘 알기에 말입니다

검정고시는 '과락' 교과만 치르는데 특히 영어가 잘 안되고 어려워 다시 치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 시기에 학업을 마칠수 있었던 저의 여건, 특히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이 크게 다가왔던 하루였습니다.

동시에 나이와 상황이 어떠하던지간에 배움에의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계신분들은

다른 것 다 제쳐 두고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러워 보였습니다.

 

세종대왕님 덕분에 한글이 쉬워서 문맹자가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할머니 어머니 세대에는 가난해서, 여자라서, 6.25전쟁이 터져서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평생을 까막눈으로 사시던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자들은 열살만 넘으면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야해서 식당일이나 막일에 내 맡겨지고

어영부영 남자 만나 결혼 하게되면 경제생활과 아이들 키우는 일에 내 몰리면서 30대에서 50대를 훌쩍 넘기게

되어 버립니다.

그 과정에서 동 사무소나 병원, 은행업무 등 글씨를 읽고 써야하는 일에 자신감 없어하며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불안하게 마음 조리며 살았을 터입니다.

 

자식들이 다 장성하고 독립해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 마치고 보니 여유 시간은 가지게 되었지만

늙어 여기저기 병과 친구해야 할 나이가 되면서 죽음을 앞에 두게 된 나이

 

 

생일/ 도귀례

 

돈이 없슨게 안와

경비가 든게로

와야 줄 것도 없고

차비도 없고

그냥 작파해 붓어

다들 힘들게 산다

 

 

추석/ 박점례

 

새끼들을 기다렸다

보고싶고 보고싶은 새끼들

 

이놈도 온께 반갑고

저놈도 온께 반가웠다

 

새끼들이 왔다간께 서운하다

집안에 그득흐니 있다가

허전하니

달도 텅텅 비어브맀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70세 이상 노인들이 시집을 묶거나 시화전을 한다는 기사가 자주 접하게 됩니다.

할아버지 보다 주로 할머니들이 더 많긴합니다만

 

'평생교육원'이나 주민센터에서 한글을 배워 까막눈을 면하면서 할머니들이 쓴 시로

시집을 묶거나 시화전을 하게되는 뉴스를 접하면서

그분들의 시가 자신 생활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노래한 소박한 얘기들이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

 

문자를 배우는 것은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초수단을 깨우쳤다는 얘기이고

그 배움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글로 창작을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위대한 작업임에 공감하면서

그 분들의 남은 삶이 열정과 환희와 행복이기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