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심재휘 겨울 입술

생게사부르 2017. 1. 17. 20:22

심재휘


겨울 입술



그대를 등지고 긴 골목을 빠져 나올 때
나는 겨울 입술을 가지게 되었다
오후 한 시 방향에서 들어오는 낙뢰가
입술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후로 옛날을 말할 때마다
꼭 여미지 못하는 입술 사이로
쓰러지지도 못하는 빗금의 걸음을 흘려야 했다
골목의 낮은 쇠창살들은 녹슬어갔지만
뱉어 놓은 말들은 벽에서 녹고 또 얼었다
깨어진 사랑이 운석처럼 박힌 이별의 얼굴에는
저녁과 밤 사이로 빠져나간 낙뢰가 있더니

해가 진 일곱시의 겨울 입술은
어둠을 들이밀어도 다물 수 없도록 기울어져서
들리지 않는 말들을 넘어지지 않게 중얼거려야 했다
진실을 말해도 모두가 비스듬한 후회가 되었다


<딩아돌하>2016. 여름호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영관 서어나무, 느릅나무 양복점  (0) 2017.01.19
문보영 막판이 된다는 것  (0) 2017.01.18
폴 발레리 꿀벌  (0) 2017.01.16
20년후에 , 지芝에게  (0) 2017.01.15
이상국 동네치킨집을 위한 변명  (0) 2017.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