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기택 다리저는 사람, 공원의 의자

생게사부르 2016. 12. 23. 22:22

김기택 


 

공원의 의자

 

 

네 다리가 앉아 있다

무릎이 펴지지 않아서

스스로 일어설 수 없어서

서지 못하고 앉아 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부동자세로 앉아 있다

다리가 꼬아지지 않는다

꼿꼿한 등받이에 척추가 생긴다

 

명상에 잠겨 있다

머리가 없어서 명상에 잠겨 있다

엉덩이가 머리가 되도록

깊이 명상에 잠겨 있다

 

종일 앉아 있으면서도

앉을 자리가 비어 있다

바람이 와서 앉아도

햇빛이 와서 앉아도 비어 있다

 

새가 와서 앉아도

엉덩이가 생기지 않는다

나비가 와서 앉아도

몸무게가 생기지 않는다

 

종일 의자는 비어 있다

공기에 엉덩이가 생길 것 같다

허공에 무게가 생길 것 같다

무늬목에서 옹이에서

잎이 돋을 것 같다

 

 

 

다리저는 사람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그 요란하고 기이한 걸음을
지하철 역사가 적막해지도록 조용하게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가방도
함께 소리 죽여 힘차게 흔들렸다.
못 걷는 다리 하나를 위하여
온 몸이 다리가 되어 흔들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기둥이 되어 우람하게 서 있는데
그 빽빽한 기둥 사이를
그만 홀로 팔팡팔랑 지나가고 있었다 


1999. 시집 '사무원'


 

 

 

 

 

*     *      *

 

 

신체의 결함은 불편함이다.

물론 그 불편한 입장을 본인이 아니고선 정확히 알기 어렵겠지만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 중에,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은 외양으로 알기가 어려우니 더 문제다.

그 중 외모가 반반하고 언변도 좋아서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사람

사기꾼이나, 사람혐오나, 신경증, 사이코패스 성향이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사람조차

외양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게 인간의 한계이다.

' 열 길 물속보다 한 길 사람 속 모른다' 는 옛말이 있지만

사람 보는 눈을 기르는 것도 사회화나 성장의 한 과정일 것이다.

 

못 걷는 다리 하나를 위하여 온 몸이 다리가 되어 걸어주어야 하는 불편함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을 터여서 어떤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지만 ...

 

시 공부하는  내내 일관되게 권유받은 가르침

' 김기택 시인의 시에서 대상에 대한 관찰과 '묘사' 를 집중해서 보세요.'였습니다

 

관찰도 안 되지만 특히 묘사가 잘 안 되는 탓에

작정을 하고 정독도 하고 완독도 해야겠다 벼르고 있었습니다.

대상에 대한 묘사가 그림으로 치면 연필이나 펜으 그린 '세밀화'와 같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