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정선희 뱀을 신다

생게사부르 2016. 11. 29. 00:50

뱀을 신다 / 정선희


 

굽이 없는 구두였다
반으로 접으면 스르륵 접히는 구두였다
그 구두를 신으면
소리없이 걷게 된다
발 없이 빠르게 걷게 된다
햇빛을 보면 반짝이는 구두
얼핏 눈빛을 본 것 같다
주변 색과 잘 맞추는 구두
저절로 풀숲을 향하게 된다
축축한 곳을 찾게된다
혀를 날름거리게 된다
뱀에게 사로 잡힌 발
발을 꽉 물고 있는 뱀
좀처럼 벗겨지지 않는 발
발에 힘을 줄수가 없다
뱀이 가는 대로 따라 가는 발
서서히 독이 번진다는 발
이제 내것이 아닌 발
그 어떤 통증도 없이
마비가 진행되는 발,
나는 잠시 망설인다
뱀에게 발목을 던져주고
다리를 건질까?
벗어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촉,
뱀도 신발도 없는데
이 선뜩한 기운,


정선희: 경남진주
2012. '문학과 의식'  2013.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푸른빛이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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