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서해성 전야(前夜), 내가 광장이다

생게사부르 2016. 11. 21. 00:04

서해성 

 

전야(前夜)
-11.19 광장을 위하여


촛불로 밥을 지을 수 없듯
눈물로 초목을 기를 수 없듯
우리의 신념은 근육을 필요로 한다.

주술이 이성을 이길 수 없듯
관습이 자유의 힘에 무릎 꿇듯
우리의 상상은 생동하는 육체를 가져야 한다.

기다림이 더는 용기일 수 없듯
한낱 창백한 지혜가 행동이 될 수 없듯
우리의 분노는 싱싱한 연장을 지녀야 한다.

제도가 혁명을 낳을 수 없듯
밥알이 벼로 돌아갈 수 없듯
우리의 행진은 명확한 나침반을 품어야 한다.

잠꼬대가 현실을 대신할 수 없듯
허수아비가 가을 들판의 주인일 수 없듯
우리의 전진은 엄격한 시계공을 닮아야 한다.

어제를 희망으로 삼을 수 없듯
미래를 낡은 과거로 바꿔치기 할 수 없듯
우리의 저항은 내일을 오늘로 베어와야 한다.

저 묵은 들판이 쟁기날을 당해낼 수 없듯
쇠붙이가 용광로를 버텨낼 수 없듯
우리의 갈아엎는 승리는 뜨거운 창조로 타올라야 한다.

서해성 작가: 1961년 

                   balnews21@gmail.com



내가 광장이다

 

내가 광장이다.
내 가슴 속 광장을 끄집어내 광화문으로 펼친다.
광장은 거기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대중일 때
내 몸에서 돋아나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내가 광장이다.
여기가 현재다.
언제든
어느 역사에서든
대중이 일어선 오늘이 곧 광장이다.
11월12일
나의 시간이 나의 공간이다.
여기가 4.19이고
여기가 6월시민항쟁이다.
서슴없이 말하라.
여기가 미래다.

내가 광장이다.
이 광장 모퉁이에서
나는 분노와 눈물에게 빚을 졌나니
어제들아, 오너라.
숨어 있던 비겁도 이리로 나오너라.
내가 광장이다.
오늘 나의 자유는 한 뼘도 빚지지 않으련다.
오늘 우리가 가는 길이 미래다.

가서, 내가 광장이 되련다.
가서, 내가 혁명이 되련다.
내가 광장이다.
내가 권력이고
내가 국가다.
가자, 나에게로.
가장 넓은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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