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천
박달재 아이들
성배는 흔히 하는 말로 지진아다
성배의 평균 점수는 대개 20점 미만이다
그래도 성배는 제 답안지에 번호 이름을
꼬박꼬박 적어서 내고
0점을 받아도 남의 걸 훔쳐 쓰지 않는다
가끔 보다 못한 감독 선생님이 슬그머니 답을 알려 주어도
성배는 결코 그 답을 받아 쓰는 일이 없다
그냥 틀리고 만다
그런 성배 녀석이 좋다
공부 못한다고 아무도 성배를 나무라지 않는다
애시당초 시험 점수하고 성배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두들 성배의 착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직하고 착하게 사는 일 말고
우리가 그렇게 기를 쓰고 배워야 할게 또 무어라 말인가
성배의 웃는 얼굴을 볼 때 마다
착하고 정직한 성배의 눈을 볼 때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일 말고
진정 우리에게 중요한게 또 무언가라고
* * *
이미 35년 이전, 한 학생이 생각 난다
중 2면 열 다섯살인데 체격도 왜소했거니와 한글 읽고 쓰는 것이 전혀 안 되는 아이가 있었다.
자기 이름도 썼다기 보다는 그려 놓고 맞는지 옆 친구에게 봐 달라고 할 정도였다.
중1 담임 선생님께서도 한글 독해는 할수 있어야 하신다면서 엄청 훈련을 시키셨다는데 진척이 없었다.
나 역시 그런 정보를 이미 들었지만 직접 지도해 보지 않고는 학생 상황을 알 수가 없어서
ㄱ(기역) ㄴ(니은).... 하고 가르치고 쓰게 했는데, 다음 날이 되면 그 아이의 머리속은 또 백지처럼 되어서
구분을 못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문자를 구분하게 해 주려해도 하루만 지나면 기역과 니은 구분을 못했고 디귿, 리을 구분을 못했다.
그 학생은 다른 친구들이 공부하는 동안 하루 종일 글씨를 보면서 노트에 베껴쓰기를 하는데
글자를 익히고 있다기보다 기호를 그리고 있었다.
결국 책 본문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매일 머릿말이나 들어 가는 말만 일년내 보고 그리다 마쳤다.
나중에 가정사를 알고 보니, 행상을 하는 어머니가 딸만 내리 셋 있어 나중에 제삿밥이라도 얻어 먹자고
보육원에서 데려 온 아들이라 했다.
한글 독해 말고도 행동도 어수룩하고 분별력이 없어서 숙직실에 가서 쥐포를 굽다가 소사 아저씨한테
붙들려 오기도 했다.
보통 IQ는 75를 기준으로 정상의 경계로 삼는데 70-75라도 학업이 안 된다 뿐이지 단순한 생활은 훈련이
되기도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와 누나들 사랑을 받고 자라서 그런지 생활훈련은 일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좀 모자라는(?) 아이도 학급의 다른 아이들이 암묵적으로 보호해 주는 분위기였다.
이를 테면 다른 학급의 아이들이 그 애를 건드리면 편을 들어 주는 등 학급 구성원으로 유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수전 교수이셨던 학급 반장이 덩치가 좀 작아 비슷한 번호대였는데 성적이나 가정형편
구분하지 않고 같은 나이의 친구로 티격태격 했던 것 같다.
그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 했을 즈음 우연히 그 학생을 버스에서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이라고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근황을 알려 주었다. 중학교 마치고 철공소에 다닌다고 했다.
통영에 조선소가 많이 있었고, 시내 가까은 곳에도 선박 정비업체들이 많이 있었다.
' 돈 벌어 어머니에게 효도 할 거'란 얘기도 했다. 어떻든 그 아이를 만난 후 저 정도면 지 앞가림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능력이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머리 쓰는게 좀 부족하면 단순 노동에서는
뚝심같은 성실함으로 보완을 하면 될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위 詩의 성배에 대해 생각 해 본다. 실제 중학생 과정에 성배 같은 친구들이 다수 있다.
해도해도 안되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공부를 좀 하면 제대로 할 것 같은데 여러가지 이유로 공부에서 마음이 뜨고
아예 공부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지 않아 그런 상태가 된 친구들도 있다.
수업 시간에 학습에 집중하지 못하고 엎드려 있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고 괴롭히는 주의산만한 친구들이
십중팔구 그런 친구들이다.
특히 그런 친구들을 단시간에 잘 파악 할수 있는 건 시험 때인데 OMR 카드 답안지에 반 번호 이름 과목 표시하고
1분도 안 되서 엎어지는 친구들, 문제를 읽지도 않고 똑 같은 번호로 마킹을 하거나 지그재그, 다이아 몬드,
답안 표시하는 건 그냥 지 마음이다. 문제가 25번까지 있는데 30번까지 마킹 해 놓기도 한다.
심하게 문제가 많은 친구는 퍼 엎어져서 자필로 자기 답안지 번호 이름 표하는 것도 성가셔 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 대처 방법은 보통 두가지인데 시험 시간 끝나는 5분전까지도 마치지 않으면 말로 위협하며 윽박지르거나
아이를 구슬러거나 두가지이다.
보통 선생님들이 정답 번호 비율을 비슷하게 내면 10점에서 20점대 점수가 나오기도 하는데, 지그재그로 한 친구들
중에는 정말 묘하게 정답을 피해 0점이 나오기도 한다.
그 친구들은 문제를 읽고 생각해서 답쓴 것이나 그냥 찍은 점수나 그게 그거고 간혹 그냥 찍은 점수가
문제를 푼 점수보다 더 낫게 나온다고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학생을 불러 평소에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계속 그렇게 하면 언제까지나 똑 같지만
조금씩이라도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면 나중에라도 나아 질 가능성이 있다.
언제까지 아이가 아니다. 나중에 운전면허를 따든 조리사 미용사 자격증을 따든 그런형태의 시험을 치른다고...
특히 감독시간 중 자신의 실력으로 푸는지 아닌지 가장 확실하게 표가 나는 과목은 '수학'이다.
학부모들이 그렇게 영수 학원을 뺑뺑이 돌려도 불행한 일이지만 열심히 풀고 있는 아이는 1/3이 안된다.
착하고 정직하게 역량만큼 땀 흘려 살면 된다? 과연 그럴까?
우리 일반의 생각처럼 그 부모님 생각도 과연 그럴까?
자기 자녀가 아닌 경우 그렇게 원칙적으로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그 해당학생의 학부모님은 자녀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요즘 학교 분위기는 30년 이전과는 매우 다르다.
부모의 관심이나 사랑이 결핍 된 친구, 학원에 내 몰리면서 마음이 황폐해진 친구, 학업부진으로
모든 생활에서 좌절하는 등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친구들은 누군가 자신의 불만을 풀 수 있는
대상을 만나면 사정없이 풀기 마련이다
(학업적 성취만 낮을뿐 자신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춘 아이들도 있지만)
당연하게도 뭔가 부족하고 모자라거나 학업이 낮고 어릴 적 부터 성취를 맛보지 못하고 좌절 해 오면서
자존감이 낮아진 친구들은 대다수 학교폭력이나 왕따의 대상이 되곤 한다. 특히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생 과정에
스스로를 지 킬수 없는 아이들, 심리적으로 유약한 친구들이 종종 그 희생이 되곤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사회일반의 용어로 가해, 피해란 용어를 사용하지만 양쪽 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긴 마찬가지이며
아직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은 양쪽 다 패해자가 된다는 것이 성인들과의 차이점이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지식으로 배우기 이전,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에서, 더 가까이는 부모의 모습에서
삶의 가치나 태도를 배운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기에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 분위기, 부모들의 삶의 태도를 그대로 배우기에
학생들의 문제는 곧 우리 어른들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착하고 정직한 성배가 그 심성을 그대로 지니고도 잘 살아 갈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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