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태일 가을, 허정분 쥐

생게사부르 2016. 11. 14. 09:10

가을 / 박태일


낮잠 많은 고양이
은빛 먹이 양푼에
볕살이 가득

모과 둘 투툭 굴러 내린 덴
장독인가 고방인가
마당쥐 시궁쥐가 서로 묻는다


 

쥐/ 허정분


요, 생쥐란 놈,
겁도 없이 무쇠 철판 컨테이너를
침입해서
꼭 깨알만 한 똥을 내지르며
땅콩이며 들깨 묘기부리 듯 까먹은
자리에
청부 살생의 끈끈이 쥐덫 놓고
석 달 열흘 까맣게 잊었던 대한날

함지박을 꺼내다가 뭉클 밟히는 촉감
세상에! 한 일가의 몰살이라니
어미 쥐와 애비 쥐와 엄지 손가락만 한
새끼 두마리
필경 어린 새끼들의 비명을 듣고
달려왔을
절박한 모정이며 부정이
끈끈이에 석고상처럼 굳어진 저 동물의
죽음

피 토하며 최후의 혈서를 쓴 몸부림이
이빨을 갈아대며 저승길에 들었을
서생원 일가의 비명이
꿈자리마다 이명처럼 따라붙을 텐데

아이쿠! 맙소사! 하느님,



'울음소리가 희망이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