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서영 식물의 눈동자,업어 준다는 것

생게사부르 2016. 11. 17. 18:15

박서영


식물의 눈동자



식물에게도 눈이 있다고 한다
태양을 바라보는 맑은 눈이 있다고 한다
식물의 눈동자는 뜨거운 것을 향해
환히 열린다는 것일까
태양을 똑바로 보고 걷지 못하는
얼굴을 찌푸리고 바라봐야 하는 나와는 달리
저, 말랑말랑한
부드러운
몸들은 빛의 뿌리를 끌어당겨 꽃핀다는 것일까
씨앗을 날린다는 것일까

빛이 낯 설어 어둠 속에서 둥그렇게 열리는
나의 눈동자와는 달리
어둠 속에서 도리어 빛나는 짐승의 눈동자와는 달리

식물에게도 눈이 있다고 한다
아프면 눈동자에서 먼저 현기증을 느끼고
모가지가 툭 꺾어진다고 한다
그때마다 뿌리는 환한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짐승의 맨발처럼 온 몸을 살리려고
밤새 어딘가 다녀오곤 한다고,

 

 

 

 

업어 준다는 것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 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 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 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