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외국 시

폴 발레리 석류들

생게사부르 2016. 11. 6. 00:24

폴 발레리 / 석류들


 

너희 알맹이의 과잉에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아,
제가 발견한 것들의 힘에 겨워 파열하는
고매한 이마를 보는 것만 같구나.

너희들이 받아들인 햇빛이,
오 반쯤 입을 벌린 석류들아,
긍지에 시달리는 너희더러
홍옥의 칸막이를 깨부수라 하여,

껍질의 마른 황금이
어떤 힘의 욕구에 밀려
과즙의 붉은 보석되어 터질 때,

이 빛나는 파열은
내가 지녔던 어떤 영혼더러
제 은밀한 구조를 몽상하라 한다.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 작가 생활 초반에는 주로 상징시를 썼으나, 후반부에는 산문에 집중하여

학문 전반에 걸쳐 평론과 논고를 집필했다. 시집으로 “매혹”(1922) 등이 있다.

 

 

      *     *     *

 

 

석류 속 알맹이는 그야 말로 보석입니다.

이 詩가 한 폭의 그림처럼 사진처럼 지극히 색채가 아름답다면 편견일지...

 

익어가는 석류의 반쯤 벌어진 보석같은 알맹이의 아름다움,

학자들이 학문하는 과정에서 그 높은 정신이 성숙할대로 성숙해서

저절로 삐져 나오고 터져 나오는 것에 비유한 시랄까요.

시인들의 시적 영감, 학자들의 지혜의 말,

고매한 정신이 벌어지는 석류 알처럼 직관으로 쏟아져 나오는

정신적 성숙을 꿈꾸게 하는 시

 

이 시는 감정이 반영된 시가 아니어서 감정의 소산물로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시가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꿰뜷고 있는 시인이 소네트(서구 정형시)에 맞게 다듬어 만든시로

거의 완벽해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고 합니다(황현산 선생님 번역과 해석에 의함).

 

반쯤 터지는 석류 알맹이에 높은 정신력을 비유한 오묘한 철학적 주제는 물론이거니와 

형식에서도 싯구 한 행 한 행의 4음보와 라임체계의 완벽함, 선율의 아름다움이 화음을 이루어

한편의 완벽한 시를 이룬다고 하네요.

 

제 느낌으로는 사람에 비유하자면 아름답기도 하지만 잘생긴 시 같아 보입니다.

 

하나의 언어는 하나의 다른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한 것 같은데

이럴 때 원서로 읽어 그 묘미를 제대로 맛 볼수 있으면 좋은데... 역

량이 못 돼서 참으로 아쉽네요.

 

시인이나 평론가들 중에 국어국문학 전공자들 이상으로 영어영문학이나 불문학, 독문학 전공한

분들이 많다는 거 납득이 됩니다.

 

요즘은 전공이 전문화되고 심화되어 국어국문학 석,박사나 문예창작과 관련한 전공분들이 많지만 

내 대학 재학 시절, 학교신문 기자나 교지편집부에 국문학과 학생들이 비율적으로는 많았지만

문학 전공에 몸 담고 있어도 여러 성향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학이 아닌 언어학 전공자들은 문과보다 이과적 성향과 접합하는 영역이 좀 있었던 거 같고

문학적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교사가 되기 위한 국어, 영어, 불어교육과 성향도 있었고요

그 당시 우리 학교에는 약학과 가정과 학생 중에 글을 잘 쓴 사람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렴 시적 감수성이 풍부하다면야 전공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과학적 발견이라면 '유레카' 하겠지만 인문학적인 고매한 직관이 쏟아져 나오는 석류 

 

붉은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이 투명한 보석을 보여주려고 아이들이 어릴 때 일부러 시장에서

석류를 사 왔던 기억, 산에 구하러 가지는 못하고 시장에 나온 머루 달래 구하러 다닌 생각,

감을 먹을 때도 감씨를 반으로 쪼개면 나오는 '숟가락(떡잎모양)'을 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던 우리 애들의 어린시절

 

 

아이들이야 말로 시인의 눈과 맘을 가졌다는 생각

아쉽게도 시인이 된 아이는 없습니다만 아들은 지들 세대의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세대처럼 열명, 여섯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세 명만 되었어도 시쓰는 아이가 한명쯤 있었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