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외국 시

마르셀 베알뤼- 나무들의 목소리, 어항

생게사부르 2016. 3. 23. 01:01

마르셀 베알뤼


나무들의 목소리


수줍으나 힘센 나무들은
밤마다 높은 목소리로 말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너무나 단순하여
새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체들이 재가 된 입술을 움직이는
묘지 옆에는
연분홍 송이로 피어난 봄이
처녀같이 웃고 있다

그리고 숲은 때때로 옛사랑에
붙들린 가슴처럼
창살을 흔들면서
긴 소리를 내지른다

 

 

 

 

 

 

어항

 

어항 속의 붕어 때문에 나는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내 눈은 연신 반짝거리며 움직이는 이 생물, 나의 고독의 공간을 채우는 유일의 생명의 조각, 쪽으로 쉬지 않고 되돌아갔다. 둥근 모양의 유리 항아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느라면 그 속에 사는 주인이 투명의 벽을 지나서 방 속으로 들어와 헤엄치며 그 금빛 파동으로 나를 놀리는 듯 했다. 어느 날 나는 참다 못해 어항을 깨뜨려 버렸다. 방바닥에는 한순간 불꽃의 분출과 비슷한 반짝임이 있었다. 복수를 확인하기 위하여 나는 이 작은 생물을 손에 거두었고 이 생물은 손바닥 안에서 최후의 몸부림을 쳤다. 그러자 내가 놀라 망연자실한 것은 이 미물이 움직이지 않게 되자 나의 손가락 사이에 있는 것은 이미 하나의 차가운 물체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은 황금의 열쇠였다. 열쇠... 순간, 나는 깨달았다. 미친 듯 방을 뛰쳐나온 나는 도시를 가로질러 갔다. 그리하여 이 희한한 열쇠 덕분에 어제까지도 문지방을 넘을 수 없던 나의 애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꿈속에서 보던 그녀와 몇천 배 달랐고 몇천 배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를 나의 팔 안에 안았다. 그러자 그녀가 몸을 뒤트는 모습은 일순간 금붕어의 최후의 꿈틀거림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강물 같은 애무로 나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쾌락의 극에 이르렀을 때 내 주위의 벽들은 수정같이 빛났고 동시에 죽음 같은 냉기가 나의 온 몸에 퍼졌다. 그리고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나의 육체가 차츰 생선 비늘로 덮여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