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이화 삼십센티 여행,한바탕 당신

생게사부르 2016. 10. 24. 08:37

삼십센티 여행


박이화


머리와 가슴이 만들어 낸 거리가 한
우주다

나는 이따금 깊푸른 밤의 긴 팔로
저 소용돌이 치는 머리와
가슴까지 거리를 재어보려 하지만
그러나
한 번 뻗은 팔은 어디론가 꼬리 긴
유성처럼 사라질 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마다
누군가 내 가슴에 손을 넣어 더듬듯
별들만 아프게 탱탱해졌다 그리움도
만질수록 팽팽해지는지

그 터질 듯한

머리에서 가슴까지
삼십센티 여행에
내 한생이 빛처럼 빠르게 저물었다

 

 

 

한바탕 당신


                                        

당신이라는 말 속에는

풍선껌 향기가 난다

사각사각 종이 관을 벗기자

얇고 반짝이는 은박지에 싸여있는 당신,

그 희고 매끈한 몸이

곧 구겨질 은박지 속에서

꿈꾸듯 긴 잠에 빠져있는 듯하다

 

이미 4만 년 전부터

죽은 이의 가슴에 국화꽃 다발을 얹었다는데

그 노오란 꽃가루보다 더 향기로운

포도 맛 당신, 딸기 맛 당신, 복숭아 맛 당신이

마침내 내 혀와 침 사이에서

한없이 부드럽고 달콤해진다

 

씹으면 씹을수록 곱씹히는 당신

하루가 백년 같고 백년이 하루 같은

 

그 질겅질겅한 그리움 속에는

터질 듯 환하게 부풀다 꺼지는

한바탕 알싸한 슬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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