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안
이봐, 규화목
알리바이를 대봐!
무감한 이방에는 밤도 깃들지 않는군
화석화된,
쏜살같이 비껴가거나 건너뛰는 기억들이 있지
이봐, 규화목!
뿌리가 대지에 닿아 있지 않군
나무인지 돌인지 가계와 내력을 용케 숨기고 있어
서서히 입을 떼어봐
아버지의 흙묻은 장화를 왜 몰래 담장 밖으로 내던졌나
어머니와 언니들의 누런 속옷은 왜 슬며시 뒤란에 감추었나
소시락 거리는 바람에도 귀가 뾰족뾰족 자라고
작은 빗방울 듣는 소리에도 토끼눈을 떴었지
푸른 물관 타고 야호야호 자라나던 예민한 수액
슬슬 불때가 되지 않았나 이제?
하늘을 향해 나 뒹굴어진 뿌리와 가지와 잎
모두 어디다 숨겨 두었는지
구석 건넌방에 우적우적 찍혀 있는 장화 발자국
방안 가득 검은 구름을 피워 올리는 알코올 냄새
그뒤, 기억하고 싶지 않아 차가운 돌이되고 싶었어
너는 짤막한 토끼꼬리를 보인 채 여태 도망만 치는군
이 나이테는 뭐고 이 벌레구멍과 얼룩은 뭐야!
광물질의 토사와 시간이 잠식하기 전까지
거기 네가 있지 않았다는 것을 떠 올려봐!
언제든 붉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축축하고 캄캄한 기억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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