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생활이라는 생각
꿈이 현실이 되려면 상상은 얼마나 아파야 하는가.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절망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가.
참으로 이기지 못할 것은 생활이라는 생각이다.
그럭저럭 살아지고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우리는 도피중이고, 유배중이고, 망명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뭘 해야한다면
이런 질문,
한날 한시에 한 친구가 결혼을 하고
다른 친구의 혈육이 돌아가셨다면,
나는 슬픔의 손을 먼저 잡고 나중
사과의 말로 축하를 전하는 입이 될 것이다.
회복실의 얇은 잠 사이로 들치는 통증처럼
그렇게 잠깐 현실이 보이고
거기서 기도까지 가려면 또
얼마나 깊이 절망해야 하는가.
고독이 수면유도제밖에 안 되는 이 삶에서
정말 필요 한 건 잠이겠지만
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국이 필요한 아침처럼 다들
그래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방에서 의자에서 자고 있지만
참으로 모자란 것은 생활이다.
일생일대의 상상
가령 이런 상상,
내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돼지 사료가 되고
돼지들이 내 쓰레기 속의 유리조각을 삼키는.
가령 이런 말,
나는 인생에는 관심이 없지만 돈은 좀 많았으면 좋겠다 같은.
선망이란 언제나 현실의 반대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라서
욕망이란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해 자라나는 손가락이라서
밤마다 이가 자라는 쥐처럼
손끝이 가렵다.
가려워서 부끄럽다.
세상엔 죄 안 지은자들이 더 많이 회개하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하고
상처 많은 사람들이 남의 고통에 더 아파한다.
두개 남은 사과 조각을 향해 모여든
세개의 손처럼 생각이 많아진다.
1973. 전남 광양
1996. 전남신춘문예 시당선
2002. 계간< 문예중앙> 신인 문학상 등단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 < 친애하는 사물들>< 생활이라는 생각>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이안 이봐, 규화목 알리바이를 대봐! (0) | 2016.10.19 |
---|---|
황동규 시월 (0) | 2016.10.17 |
밥 딜런 바람에실려 (0) | 2016.10.15 |
고영민 구구, 봉지쌀 (0) | 2016.10.14 |
고영민 앵두 허밍, 허밍 (0) | 2016.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