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황동규 시월

생게사부르 2016. 10. 17. 09:39

 

시월/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旅程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을 흐르는 달빛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 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 다한 탓이리

4.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丹靑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
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
히 비가 뿌려와서...절 뒷울 안에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낙엽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하는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 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三南에 내리는 눈>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