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고영민 구구, 봉지쌀

생게사부르 2016. 10. 14. 01:28

구구/고영민


비둘기가 울 때마다 비둘기가 생겨난다

비둘기는 아주 오래된 동네
텅 빈 동네

학교를 빠져나와 공중화장실에서
긴 복대를 풀어놓고
숨죽인 채 쌍둥이 사내애를 낳고 있는
여고생
빈 유모차를 밀며 공중화장실 옆을 지나가는
할머니 머리 위

비둘기는 비둘기를 참을 수 없다
밀려 오는 요의(尿意)처럼
누군가는 비둘기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비둘기가 비둘기에게 물을 붓는다
비둘기는 꺼질 리가 없다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비둘기가 연신
비둘기를 뱉어낸다


 

봉지쌀


벚나무 밑에 꽃잎이 하얗게 쏟아져 있다
봉지쌀을 사 오던 아이가 나무 밑에 그만 쌀을 쏟은 것만
같다
아이가 주저앉아 글썽글썽 쌀을 줍는 것만 같다
집에는 하루 종일 누워만 지내는 병든 엄마가 있을 것만
같다
어린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수 없어
속이 썩을대로 썩은 늘 우는 어미가 있을 것만 같다
배고파도 배고프다고 말을 하지 않는 착한 동생들이 있
을 것만 같다
날 저무는 문 밖을 내다보며 그저
왜 안오지? 왜 안오지?
중얼 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벚나무야, 내게 쌀 한 봉지만 다오
힘껏 나무를 발로 차본다
쌀을 줍고 있는 아이의 작은 머리통 위로
먹어도 먹어도 배 부를 리 없는 흰꽃들이
하르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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