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입술/박소란
입술을 주웠다
반짝이는 입술이었다
언젠가
참 슬픈 노래로군요, 말했을 때 그 노래가 흘리고 간 것
은 아닐까
넌지시 두고 간 것은 아닐까
서랍 깊숙한 곳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입술
취해 돌아온 날이면
젖은 손으로 입술을 꺼내어 한참 동안 어루만졌다
컴컴한 귀를 두고 입술 앞에 무릎 꿇기도 했다
노래하지 않는 입술, 나를 위해
울지 않는 입술
입술에 내 시든 입술을 잠시 포개어보고도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그 붉고 서늘한 것을
돌려주어야지 슬픔의 노래에게로 가져다주어야지
내 것이 아닌 입술
여느 때와 같이
침묵의 안간힘으로, 나는, 견딜수 있다
노래는 아무것도
폐품 리어카 위 바랜 통기타 한채 실려 간다
한시절 누군가의 노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
아랑곳없이 바퀴는 구른다
길이 덜컹일 때마다 악보에 없는 엇박의 탄식이 새어나
온다
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
다만 흉터였으니
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
칼이 실려 간다 버려진 것들의 리어카 위에
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
박소란: 서울출생
2009 <문학수첩> 신인상 등단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2015. 창비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안하구나 내 추억아-윤석산 (0) | 2016.10.01 |
---|---|
전영미-아직도 모르겠니, 혼선 (0) | 2016.09.30 |
유홍준-하지무렵, 들깻잎을 묶으며 (0) | 2016.09.28 |
신용목- 민들레, 격발된 봄 (0) | 2016.09.27 |
문동만 상수리묵 (0) | 2016.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