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신용목- 민들레, 격발된 봄

생게사부르 2016. 9. 27. 00:07

신용목


민들레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 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 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사랑이 아니면 부서져 버리리라

 

 

격발된 봄


나는 격발되지 않았다 어느 것도 나의 관자놀이를 때리지 않았으므로
나는 폭발하지 않았다

꽁무니에 바람 구멍을 달고
달아나는 풍선

나의 방향엔 전방이 없다 끝없이 멀어지는 후방이 있을 뿐

아무 구석에 쓰러져 한때 몸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한때 화약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봄의 전방엔 방향이 없다 끝없이 다가오는 허방이 있을 뿐

어느 것도 봄의 관자놀이를 때리지 않았으므로 봄이 볕의 풍선을 뒤집어쓰고 달려가고 있다

살찐 표적들이 웃고 있다

—《현대시》200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