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민들레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 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 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사랑이 아니면 부서져 버리리라
격발된 봄
나는 격발되지 않았다 어느 것도 나의 관자놀이를 때리지 않았으므로
나는 폭발하지 않았다
꽁무니에 바람 구멍을 달고
달아나는 풍선
나의 방향엔 전방이 없다 끝없이 멀어지는 후방이 있을 뿐
아무 구석에 쓰러져 한때 몸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한때 화약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봄의 전방엔 방향이 없다 끝없이 다가오는 허방이 있을 뿐
어느 것도 봄의 관자놀이를 때리지 않았으므로 봄이 볕의 풍선을 뒤집어쓰고 달려가고 있다
살찐 표적들이 웃고 있다
—《현대시》200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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