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성부-벼, 김수영-풀

생게사부르 2016. 9. 19. 07:33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 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라보다 먼저 눕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