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시집 <질마재 神話>, 1975
안도현
검은 구멍
저 빈 집은 이 마을의
검은 구멍
세월의 융단 폭격을 맞았다
가까이 가서 보면
문풍지에도 숭숭 구멍이 뚫였다
나는 거기에 내 눈을 갖다대본다
옛날 나 어린 한 처녀는
이 방에서 첫 옷고름을 풀었을 것이다
머루알 같은 짖궂은 눈들이
숨죽이고 들여다 보았을 구멍
한 걸음 물러서면
또 보인다
바람의 퀭한 검은 눈동자
그림: 스코틀랜드 출신 엘리자베스 키스작
엘리자베스키스(1887-1956)는 1915년 부터 한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판화 수채화 등에서 동양색채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김
* * *
전혀 다른데도 왠지 두 시가 닮은 꼴 같다는 느낌
전설, 설화, 신화도 시가 되고 소설도 되고...
서 정주 시인의 시를 접할때마다 '시'에 관한한 타고난 재능에 감탄을 하는 만큼 비례해서
친일과 독재권력에 대한 부역행위가 두고 두고 아쉽고 안타깝다.
당사자 본인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끝까지 변명하고 합리화 했던 걸 보면
자신의 행위가 크게 과오라고 생각지 않았던지 혹 다소 께름찍해도 자신의 과오와 직면할 용기가 없었던 듯
그러한 심정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살아 생전 뉘우치거나 사죄하는 절차를 밟지 않았고 자신의 과오를
자신이 청산하지 못 한 채 삶을 마감했기에 이제 역사가 평가 할 몫으로 남겨 졌다.
그나마 자식들이라도 대신 참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미국서 의사, 변호사 하시는 분들이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실지 잘 모르겠다.
본인 당사자의 책임이 아니라도 자신들의 현재 위치가 부모의 정당하지 못한 행위로 인한 혜택의 결과라는 점을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아버지의 업적'을 추앙하는 사람들이 초청하는 공식행사에 나타나서 그 달콤한 꿀에만
(이들도 알게 모르게 서정주와 관련하여 자신의 삶에서 혜택을 받고 산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젖어 있지 말고 오히려 비판하는 사람들, 혹은 일반 국민들 앞에서 아버지의 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
죄과를 다소나마 덜어 오히려 균형을 맞출수 있을텐데 말이다.
지적질을 했으면 그 해법도 제시해야 하는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일일테니
창원 쪽 이원수 선생님의 경우를 예로 들면 아쉬우나마 한 방법이 될런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용서해주세요." - 이원수 친일행적에 대해 차녀 이정옥 공식사과 해
" 2011년 22일(화) 오후 3시, 창원성산아트홀에서 열린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종달새, 다시 날다'에서
이원수 선생의 유족 이정옥씨가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한 입장과 함께 공식사과의 뜻을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원수 선생의 차녀인 이정옥씨는 1947년 새동무사에서 펴낸 이원수 첫 동요동시집 <종달새>를 복간하고
이를 창원시에 헌정하기 위한 자리에서 '아버지가 친일작품을 썼을 당시, 자식들에게는 일본어를 가르치지
않으시고 한글을 가르치시곤 하셨는데 그런 글을 쓰셨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며
'나름대로 존경해 하시던 분들이 굉장히 상처를 입고 배신감도 느끼신 걸 이해하고,
모든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기만 하다.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한다.'라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 유족의 공식사과에 대해 '용기 있는 행동이며 가슴이 뭉클했다.'며 박수를 보냈다.
사회를 맡은 정일근 시인(기념사업회 집행위원, 경남대 교수)은
'이원수 선생의 친일시 다섯 편은 지울 수 없는 과오다. 하지만 친일의 과오를 유족이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고향의 봄이 창원시민이 다함께 부를 수 있길 바란다' 라고 밝혔다. "
* * *
인간의 삶에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한 예라 보여진다.
최근 독일에서는 아우슈비츠 독가스실 위생사로 한달 근무했던 95세의 노인을 '반민족 행위 처벌'로 법정에 세웠다.
문인들은 명예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정치인이나 경찰, 군인들처럼 직접 사람을 살해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의 글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한 사람 삶의 목표에 영향을 끼쳐 항일을 하게 하거나 친일을 하게 하는 행동의 근원이 되기에
공인으로 사회적인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그에 걸 맞는 사회적 책무가 부가되고
그들이 선택한 자신들의 행위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에 속한다
일제 강점기 친일한 자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변명을 가져다 대더라도 그 행동의 근원에
자신 개인적 권위, 치부(致副) 혹은 자기 가족만의 안위를 위해 동족의 아픔을 외면하고 침략자인 일본편에서
글을 쓰고, 강연에 동원되어 일본의 식민지배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는 것,
최근까지 우리사회 신앙처럼 여겨져 오는 ' 자신들만 잘 먹고 잘 살기'에 몰두하는 동안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희생한 안중근, 윤봉길 등 다른 많은 항일독립운동가는 제쳐 두더라도 같은 문인인
윤동주나, 이육사, 한용운이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결코 자신들의 행위가 합리화 될 수 없다
당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심지어 무지한 민중들조차 '민족'이나 국가가 처한 어려운 현실에
함께 동참하여 힘을 모아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일에 의지를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거나 아니면 적어도
항일운동 하는 사람들에게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 자신 개인의 삶을 꾸리는데서 그쳐야지
일본의 식민지배를 도우는 일에 앞장서서 동족을 배신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
서정주나 이광수 같은 문인들 역시 한 인간이기에 그분들 역시 삶에 한계가 있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 쓰는 재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분들이기에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 타산지석' 의 교훈으로
삼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성장을 거듭하면서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기에
그 분들의 과오를 통해 인간이 남기는 진정한 명예가 무엇인지 생각 해 보는 계기가 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친일파 명단' 공개이후 우리사회를 이끌고 있는 정치인, 국회의원, 대학총장, 족벌 언론과 사학,
공공기관과 여타 재단 등 사회전반에 걸쳐 아직도 득세하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이 누군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다수 알게 되었고, 그 명단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정치인을 비롯하여 어느정도 이름이 알려진 후손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커밍 아웃 된 셈이다.
그러나 그 후의 문제가 남았다.
이왕 맞을 매라면 그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 본인이 크든 작든 사죄를 해야하고 본인이 못 할 경우
자식들이라도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 그 사과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냐? '
시대적 요구에 의해 마지 못해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립 서비스 정도의 절차냐?하는' 진정성 문제는
또 그 다음의 행동으로 판단 할 수가 있다
이미 오래 전, 1980년대 읽은 얘기가 떠 오른다. 칠십 중반의 할아버지 한 분이 현직에서 은퇴 하신 후
거의 10여년 이상을 하루 같이 ' 천안 독립기념관'에 출근을 하시는 거였다
주변 청소를 하시고 독립기념관 출입문 유리창과 동상 먼지를 닦고...그 부모가 친일한 죄값을 자신이
그렇게라도 사죄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
지금은 돌아 가셨겠지만...진정성이 느껴지는 사죄는 그런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 사죄 이후 친일은 한 매듭을 맺고 화해와 용서를 할수 있는 것이지, 이제까지처럼
친일한 자들이나 그 후손들이 나서서
' 그 시대는 다 그랬다. 살아 남은 자들은 다 친일 한거냐? "
' 일본과의 새로은 관계를 모색해야지. 언제까지 지나간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것이냐 '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 땅에서 살아 가야 할 우리 자식들이 ' 당당한 삶' ' 진정한 자존감' '제대로 된 용기나 명예' ' 사회적 정의'
'인간의 도덕성'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져야 할 가치나 신념이 어떤 것인지 알고 그런 것이
전제된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 갈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고 이루어 내야 할
역사의 과거 청산 문제인 것이다
친일 말고도 군사독재 시절(박정희,전두환 모두 해당) 도 마찬가지로 정치인 특히 살인이나 고문 같은
인권유린으로 개인의 생명을 빼앗거나 삶을 파탄나게 한 경우 ' 사죄'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희생자나 유족들의 상처를 치유 하는 일에 헌신 할수 있을 때 그 죄값이 감해지는 일일진대... 글쎄
오히려 내년 박정희 탄생 100주년 제단에 바쳐질 '우상화 작업'에 여념이 없는 분위기던데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을 만들고 우표를 발행하고 대대적인 추모 사업에다 국정화된 교과서를 바치겠지만
그게 뭐!
그런방식이 정말 허망한 일이라는 걸 언제쯤이면 알게 될까?
이승만, 백선엽, 김활란 등 동상들이....반면교사가 될 날이 그렇게 멀지 않았을 텐데
4.19 이후 이승만 동상이 끌려 내려와 밟히고 부서지고...
이미 그 사람들은 이런 저런 삶을 살았고, 그 이후 우상화 작업은 결국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필요에서 만들어 낸 일들 일뿐,
3.1 운동후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임시정부' 법통을 잇기 싫어
'건국절'을 만들어 이승만을 '국부'로 만들고자 하는 선봉격인 이명박근혜 전 현직 대통령, 김무성 등
친일 혹은 그 주변에서 얼찐거리는 정치인들, 친정부 재벌기업,언론들, 각계각처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 )
그러든지 말든지 ' 지 죽고나서야 무슨 상관이야 인생은 저렇게 멋지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추종세력들이
결국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시켜 주는 데 한몫 해 온 것이지만...
한 시대를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최고로 성공하고 누리면서 산 삶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 인생을 저렇게 살면 안된다'고 해야 '인간의 명예'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들이 아닐지
윤동주 시인도 탄생 백주년이더만...
우리 사회에서 '정신이나 영혼이 맑은 사람' ' 도덕성이 높은 사람'이 존경 받는 사회는 언제 쯤 일지...
그 정도는 기본으로 깔고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는 사회...오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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