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언주-발바닥, 미로찾기

생게사부르 2016. 9. 3. 00:52



이언주

 

 

발바닥 



전복을 씻는다
칼등이 스칠 적마다 움찔거리는 발바닥
겹겹 눌어붙은 찌든 때가 밀려나온다
파도를 등에 지고 거친 바위를 걸었을
단단한 바닥 하얗게 드러난다
군데군데 부비트랩 숨어 있던 아버지의 길은
언제나 가슴 졸여야 했고
피딱지 엉겨 붙은 물집 잡힌 발바닥엔
뜨거운 슬픔이 고여 있었다
늦은 밤 고단한 아버지 몸이 앓는 소리에
단칸방 문풍지가 파르르 떨리곤 했다
있는 힘을 다해 껍질에 몸 붙인 전복
예리한 칼끝이 멍든 핏줄기를 건드렸는지
푸른 내장 주르르 흐른다
전복 등껍질 벗겨내자
주름 굳은 발바닥 내력이 읽힌다
때 절은 거뭇한 패각 안쪽에
아버지의 한 생애 어룽져 있다

 

 

 

 

미로 찾기


길을 잃었다
환한 통로에서 길과 엉켜버린 발
오르던 계단을 돌아서 내려가자
지하의 동굴이 迷路인지
좀 전 플랫폼이 건너편이다
빛 속으로 달려 나온 전동차는
멀미처럼 @@골뱅이를 쏟아놓는다
컴퓨터 화면을 누비던 핏발들이 몰려나와
지루한 반복 음으로 바닥을 두드린다

사방으로 뚫린 迷路에서
사람들은 未路 속으로 떠밀려간다
길눈 어두운 나는
낯설고도 익숙한 경계에서
아직도 두리번거리고
벽에 걸린 지도는 명쾌하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길을 찾는다는 것
지하철 진동이 무겁게 닿았다
또 떠나고
몰려오는 발자국 소리들
미로를 빠져나간다

 

<2010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 문학상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