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정영 아무리 손 내밀어도 닿지 않는

생게사부르 2016. 8. 30. 00:17

정영


아무리 손 내밀어도 닿지 않


아무리 빗줄기를 움켜쥐어도 빈손뿐인 나와
동물원에서 작별하기 위하여
손을 내민다

돌고래를 만나고 싶어하는 나와
지느러미를 빼앗으려다 덜컥 울어버린 내가
나를 동물원 쓰레기 통에 버리고
돌아선다

캥거루의 주머니를 갖고 싶어하는 나와
주머니 속에 들어가려다 죽은 엄마에게
전화를 건 내가
나를 동물원 미아보호소에 맡기고
돌아선다

등에 낙타 봉우리가 솟기를 기도하는
나는
단봉 낙타에게서 봉우리를 훔쳐 달아난
나를
우리에 가두고 웃는다

일없이 창살을 흔들어대던
긴팔 원숭이는
이미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비웃느라
자꾸만 손가락을 뻗으며 뻗으며
아무리 손 내밀어도 닿지 않는 내 등뼈
같은,
내일을 가리킨다


감상: 권혁웅


내 마음의 동물원에 놀러 오시겠습니까? 동물이란 마음을 대신한 몸이죠

돌고래쇼는 당신을 위한 재롱잔치이고 캥거루쇼는 죽은 엄마를 상연하는 마술쇼입니다.

인생의 시련으로 등이 굽었습니까? 더한 인생도 있음을 알려면 낙타쇼를 보고 가세요.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당신의 등뼈 안에 숨겨져 있다고 긴팔 원숭이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네요.

코키리는 큰 슬픔이고 얼룩말은 얼룩진 슬픔입니다.

곰이 미련한 네모라면 치타는 빠른 세모죠

여기에는 없는 게 없습니다. 동물원에서 길을 잃은 어린시절의 나만 없지요

나는 늘 나를 놓치거든요. 다시는 돌아 갈수 없는 시절이 거기 봉인되어

있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