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맨드라미 손목을 잡고
내가 말을 잃고
고양이처럼 울 때
맨드라미 흰 손목에 그어지던 햇살
칼자국처럼 가늘고 창백했다
내가 골목 끝에 이르러
지나친 집의 주소를 잃고
떠 다닐 때
맨드라미 손목
붉은피 핥으며 살았다
나 그렇게 견뎠다
녹슬어 가는 자전거와 골목사이 공터에서
맨드라미 손목은 울음 같았고
혼자 그네를 밀고 있는
기다림은
살을 입고 피가 도는지
한없이 붉어지고
붉은 둘레를 걸어다니며
나 오직 먼지가 되기 위하여
맨드라미 뿌리에 닿기 위하여
폐관하는 저녁
저 물속 어디쯤 내가 떠나 온 자리라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이제 그만 잠들고 싶다고
굳게 입을 다무는 집
화단처럼 깊어만 지네
1965. 경북 상주
1997. <시와 사람> ' 집에오니 집이'없고
1999. 경향신문 신춘문예, <풀과 함께> 당선
* * *
이 시인 신춘문예 당선 작품이 단정한 글씨로 오래된 내 옛날 노트에 씌여있었다
그 당시 첫 데뷰도로 30대니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詩歷 약 20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시집이 많이 나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2006년에 제 2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 있다" (2006. 창비)가 출간된 걸 보면...
젊은 시절 시인이 되겠다고 얼룰을 디민 뒤 작정하고 시를 계속 쓸 경우 시인에 따라 다르지만
6,7년 혹은 3,4년 터울로 시집이 출간되기도 하고
한창 시신에 접신한 사람은 1, 2년만에 연이어 시집을 내 놓기도 한다
전업 시인들도 보통 시집 세 권 묶고나면 4권으로 넘어가는게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 시인들이 시작노트나 시 산문집을 쓰기도 한다는데...
시집이 뜸하게 출간되었다는 얘기는 생활인으로 살다보니 시를 쓰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
직업적인 시 쓰기에 쫒겨 얀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쓴 것을 모아서 묶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아직 시로 얼굴을 내밀기 전의 사람들은
추천을 위해 열심히 공모전 문을 두드리고 있기도 하고
신춘문예 응모를 위해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지만
젊든지 절실한 소망이나 열정이 있어야 그 목표를 위해 다른 것 다 가지치기하고 매진할 수 있을 덴데,
인생을 좀 살고 나면 등단이 끝이 아님을 알고
시집을 출간 했다고 또 끝난 것이 아님을 알고 결국 끝없는 과정이 삶임을 ...
결국 아슴하게 뭘 몰라야 '미칠 수' 있는가 싶기도 하고
인생, 이것저것 너무 많이 알고 나면
'미치지 않고서야' 뭔가를 이뤄낸다는 게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다.
풀과 함께
풀들도
새벽이면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지
작은 잎들까지도
이슬을 맑게 밀어내며
긴장을 풀어내곤 한다
그런날
여지 없이 여기저기서
어린 풀들
쑥쑥 머리를 내밀고
손을 들어
저요,저요한다.
그 중에 튼튼한 녀석
하나와 단단하게
접붙고 싶다.
* * *
젊은 시절의 톡톡 튀는 감성의 언어
성애(性愛)적인 이미지마저 참 단아하다.
중년에 접어 들어서는 가볍지 않은 체험이 시에 무게를 더하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태어난 해와 거쳐 온 성장기 문화가 달라 ' 세대차'는 세대차 일 수 밖에 없다
늦게 시작한 시 공부
시간을 거꾸로 되 돌릴 수 없으니
젊은시절 정서와 열정, 치기를 되돌려 시에 반영할 수 없으니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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