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집 / 이승희
나무의 내부에는
무엇이 살고 있는 것인가
배반의 꿈으로 도끼날을 세워
찍어보고 싶다
거기 정말 생각처럼
깊고 오랜 강물이 흐르는지
둥근 잎사귀처럼
작고 둥근 무수한 손들이 있어
나를 위로 했던 것인지
땅속 나무의 집에는
또 얼마나 많은 씨앗들이
작은 손들을 맞대어
어둠을 밝히고 있는지
지난 겨울을 살아낸
노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잠들어 있는지
벌 한마리가
꽃의 내부로 온 몸을
밀어 넣듯이
그렇게 그 속을 들여다보고만 싶은 것이다
갈현동 470-1 골목
어둠을 이해하는 건 불빛이다. 그래서 밤새 빛으로 남을
수 있는 거다. 저녁불빛을 보면 안다. 어떤 사랑도 저보다
아름다운 스밈일 수는 없다.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밝아지
는 이유들. 불빛이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걸 굳이 화해
라고, 용서라고 표현 할 일이 아니다. 빛 속에서 어둠이 만져
지거나, 어둠속에서 빛이 만져지는 건 다 그런 이유이다
늙은 불빛 한점 물처럼 오랜 물길 흘러 집의 지붕을 적시
고 사람의 집도 이제 물방울 같은 불빛 하나하나로 도랑
을 이루며 흘러간다. 서둘러 불을 켜는 사람을 보면 눈물 나
게 고맙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어 그 사람의 정신세계에 몰두하다 보면
그 인생의 궤적이 궁금해 질 때가 있다.
결국 시나 소설도 사람이 쓰기 때문에...
그래서 평생의 시간차에 따라 순서대로 저서를 읽는 경우가 있다
조정래 작가의 경우처럼 거의 어느 작품이나 신뢰가 가는 사람이 있고
' 아 ! 이러면 안 되는데...'
인생은 흐르기 마련이고, 그저 그런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내 일처럼 안타까워하면서 아쉬워 한 적도 있다.
이문열의 '금시조'가 내 젊은 청춘을 얼마나 살 떨리게 했던지
김지하의 '오적'이나 '타는 목마름으로'에 얼마나 통쾌해하고 마음 조려했는지...
그들은 한 시절을 풍미했던 사람들이고 여전히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이제 그들은
내 맘속에서는 지워진 사람들이다. 내가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야 눈도 꿈쩍 안하고
문학인으로는 기득권을 누리고 잘 살고 있지만...언론에 노출될 때 나는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나름 믿음이 컸던 만큼 배신감도 더 크기 마련이어서...( 전적으로 내 잘못이지만)
나무의 집이 나온 이후 17년 정도 흘렀나?
젊은 시인은 중년의 시인이 되었고
끝임없이 흐르는 세상의 변화에
詩도 흐름을 탈 것이고
인생은 얼마나 넓어지고 깊어졌나
세상은 얼마나 얕아지고 가벼워졌나
그래도 대다수 시인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의 정신세계를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더 나아가 인생관의 확장과 더불어 시관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승희 시인은 편안하다.
하긴 시인이 현실적인 삶에서 무슨 큰 권력이나 富를 누리겠냐만
그래도 다른 무엇이 아니고 詩여서 얼마나 다행인가
시를 붙들고 있는 동안만큼은 ' 죄'를 덜 짓는다고 하니 말이다.
약력:
1965. 경북 상주
1997. < 시와 사람>에 ' 집에오니 집이 없고' 당선
1999. 경향신문 신춘문예 ' 풀과 함께' 당선
시집: < 저녁은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2006.창비
<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2012. 문학동네
<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2017. 문예중앙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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