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 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 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 줄
그 무엇이 되어야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 * *
안도현 시인은 9월이 오는 강가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노래하지만 현실은?
사진출처: 앞산꼭지의 '초록희망'
인간미 물씬 풍기고 낭만이 흐르기까지 하는 강은
이제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되는 건 아닐까?
시나 오래된 사진에서나 볼수 있는 건 아닐지
마음이 답답 한 속에서
월요일 하동 녹차연구소 공장에 들렀다 오는 길에
숨통이 조금 트이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올라 갔다가 일 보고 내려오는 중에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 오래된 '콩국수'집엘 들러
늦은 점심겸 이른 저녁을 먹었고
마침 장이 섰길래 한바퀴 돌면서 시골장 구경을 했지요.
송림에 잠깐 앉았다 왔는데
군데군데 도로나 교량 공사는 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섬진강을 건드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요.
원래 강은 흘러야하고 흘러서 강인데
흘러야 할 강을 막아 숨을 못쉬게 해 놓으니 온통 녹조천지
강이 흐른다는 극히 상식적인 일이 새삼스럽고 특이해 보이는 역설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당연히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져서 그리운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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