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곽재구-나무

생게사부르 2016. 8. 23. 01:28

곽재구


나무



인간인 내가
인간이 아닌 나무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모르는 이들은
만행중인 바람이
나무의 심연을 헤적인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나무는 제 앞에 선 인간에게
더덕 꽃 향기 짙은 제 몸의 음악을
고요히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나무는 춤을 출 때
잎사귀 하나하나
다른 춤의 스텝을 밟는다
인간인 당신이 나뭇잎 속으로 들어와
춤을 출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그러다가 홀연 당신 또한
온몸에 푸른 실핏줄이 퍼져나간 은빛
이파리가 된다

인간이 아닌 나무가
인간인 내게
시를 읽어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땅에 누우면
당신도 나란히 나무 곁에 누워
눈보라가 되거나
한 소쿠리 비비새 울음이 된다
먹기와집 마당을 뒤덮는 채송화 꽃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