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지웅 어깨너머라는 말은

생게사부르 2016. 8. 24. 07:01

박지웅


어깨너머라는 말은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아무 힘들이지 않고 문질러보는 어깨너머라는 말
누구도 쫓아내지 않고 쫓겨나지 않는 아주 넓은 말
매달리지도 붙들리지도 않고 그저 끔뻑끔뻑 앉아 있다
훌훌 날아가도 누구 하나 모르는 깃털 같은 말
먼먼 구름의 어깨너머 달마냥 은근한 말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은은한가
봄이 흰 눈썹으로 벚나무 어깨에 앉아 있는 말
유모차를 보드랍게 밀며 한 걸음 한 걸음
저승에 내려 놓는 노인 걸음만치 느린 말

앞선 개울물 어깨 너머 뒤따라 흐르는 물결의 말
풀들이 바람따라 서로 어깨너머 춤추듯
편하게 섬기다 때로 하품처럼 떠나면 그 뿐인 말
들이닥칠 일도 매섭게 마주칠 일도 없이
어깨너머는 그저 다가가 천천히 익히는 말
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아주 닮아가는 말
따르지 않으도 마음결에 먼저 빚어지는 말
세상일이 다 어깨를 물려주고 받아들이는 일 아닌가
산이 산의 어깨너머로 새 한마리 넘겨주듯
꽃이 꽃에게 제자리 내어주듯
등 내어주고 서로에게 금 긋지 앉는 말
여기가 저기에게 부리는 말
이곳이 저곳에 내려 앉는 가벼운 새의 말
또박또박 내리는 여름 빗방울에게 어깨 내주듯
얼마나 글썽이는 말인가 어깨너머라는 말은


시인동네 2015.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