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부레옥잠, 부레옥잠의 말, 부레옥잠이 핀다

생게사부르 2016. 8. 25. 09:52

부레옥잠/신미나


 

몸때가 오면 열 손톱마다 비린 낮달이
선명했다

물가를 찾는 것은 내 오랜 지병이라,
꿈 속에서도 너를 탐하여 물 위에
공방(空房) 하나 부풀렸으니 알을 슬어
몸 엣것 비우고 나면 귓불에 실바람
스쳐도 잔뿌리 솜털 뻗는 거라 가만 숨
고르면 몸 물오르는 소리 한 시절 너의
몸에 신전을 들였으니

참 오랜만에 당신 오실적에는 볼 밝은
들창 열어두고 부러 오래 살을 씻겠네
문 밖에서 이름 불러도 바로 꽃잎
벙글지 않으매 다가오는 걸음소리에
귀를 적셔 가매 당신 정수리 위에
뒷물하는 소리로나 참방이는 뭇 별들 다
품고서야 저 달의 맨 낯을 보겠네


 

부레옥잠의 말/노미영


슬픔과 물은 한몸이다
빛깔이 없고 향기가 없고 맛이 없는 몸
휘몰아치면 하늘과 땅을 호령하는 것도,
오래 고여 있다 보면 시큼씁쓸해지는 것도,
​입술이 부르튼 슬픔이 강둑에 앉아
잠시 목을 축인다
목이 마르다
닻도 키도 필요 없는 이 여행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부유물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흐르다 보면
밑창은 저 하늘 멀리 물고기자리까지 흔들어
보이지 않는 것끼리, 어두운 것끼리
마음 포개고 숨을 고르면
부르르 떠오르는 영혼의 떡잎들
영혼에게도 우산은 필요하다
불어나는 슬픔을 걸러낼 수 없어
멍울처럼 퍼져 터지는 꽃잎들의 계이름을 받아쓰다 보면
향기로운 불행의 뒤태가 만져질 것 같아
물은 오늘도 헝클어진 머리칼을 빗고 또 빗으며
백야(白夜) 같은 슬픔의 뿌리들에게 입을 맞춘다


부레옥잠이 핀다/손영희



1.
그여자, 한번도 수태하지 못한 여자
한번도 가슴을 내 놓은 적 없는여자
탕에서, 돌아 앉아 오래
음부만 씻는 여자
어디로 난 길을 더듬어 왔을까.
등을 밀면 남루한 길 하나가 밀려온다
복지원 마당을 서성이는
뼈와 가죽뿐인 시간들

2.
부레옥잠이 꽃대를 밀어 올리는 아침
물속의 한 여자가 여행을 떠난다
보송한 가슴을 가진 여자
푸른 잠옷을 수의처럼 걸쳐입고
제 몸 속 생의 오독을 키우던 여자
누군가 딛고 일어서는
기우뚱한 생의 뿌리


시집<불룩한 의자> 2009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승희 맨드라미 손목을 잡고  (0) 2016.08.27
안도현-9월이 오면  (0) 2016.08.26
박지웅 어깨너머라는 말은  (0) 2016.08.24
곽재구-나무  (0) 2016.08.23
백무산-그런 날 있다  (0) 201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