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주
지심도
후미진 골목에 섬이 있다 저녁 7시 날개 젖은 기러기들이 모여든다
주방장도 종업원도 한국말을 못하지만 기둥엔 특식처럼 한글 메뉴가 붙어있다
비빔밥 25元
후라이 추가 5元
통유리 너머로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까워 지는 저녁
풍경을 해체한 유리벽이
거울의 감정으로 섬을 호출한다
깜깜한 통유리 속으로 탁자가 불려 들어가고
잠바 입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이름표의 뒷모습처럼
가볍게 끌려간다
윤곽만 남은 그늘이 흩어져 앉아
밥을 비빈다
거울 속에서 뱃사람 처럼 소주병을 기울이고
어떤 다리는 구두를 벗고 사라진다
누군가 말없이 등을 쳐다보고 있는 느낌,
등이 등을 읽는다
- 현대시학 2016. 3월호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효근- 느티나무로부터, 상수리나무 스승 (0) | 2016.08.21 |
---|---|
황유원-전국에 비, 지네의 밤 (0) | 2016.08.20 |
황유원- 루마니아 풍습 (0) | 2016.08.18 |
김경주-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0) | 2016.08.17 |
이육사-광야(曠野) (0) | 2016.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