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육사-광야(曠野)

생게사부르 2016. 8. 16. 03:22

이육사


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葡)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1939. 문장

 

 

 

 

이육사(1904~1944)는 경북 예안(안동)출신으로 본명은 이원록이다.

40년 사는 동안 평생의 반 이상을 체포 구금 옥살이를 하였으며(17차례)

이육사(264)라는 호는 수인번호에서 따 왔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43년 북경에서 국내로 귀국할 때 무기를 반입하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일경에 체포되고 북경으로 압송되어 그 곳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했다.

 

그가 감옥에서 사망하자 일제는 그의 친척이자 독립운동 동지이기도 한 이병희에게

' 시신을 인수 해 가라'고 연락했다.

이병희는 서둘러 총영사관으로 가서 육사의 시신을 수습하고 유품을 챙겼다.

육사의 유품은 마분지에 쓴 '광야', '청포도' 등 시 몇 편과 만년필 등이었다

 

' 그날 형무소 간수로부터 육사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어.

저녁 5시가 되어 달려갔더니 코에서 거품과 피가 나와 있었어.

아무래도 고문으로 죽은 것 같아'

 

이병희가 목격한 육사의 마지막 모습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으며 당시 이육사는 40살이었다.

 

고문으로 인해 사망한 경우 이를 감추기 위해 일제는 시신을 훼손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 병희는 빌린 돈으로 이육사의 주검을 재빨리 화장 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유골단지를 넘겨 줄때까지 언제나 품에 안고 다녔는데

심지어 맞선을 보러가는 자리에까지 유골을 안고 나갔다고 한다.

 

정운현,' 조선의 딸 총을 들다.' - ' 청포도 시인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저항시인 이육사의 시신을 인수한 항일투사- 이병희 편-

 

 

李陸史 (1904-1944)본관 진성(眞城) 자 태경(台卿)

시인,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 이원록(李源綠/이원삼 李源三/이활 李活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생.

육사는 호인데 대구형무소 수감번호인 264에서 따 온 것이다.

 

중국 베이징[北京(북경)] 조선군관학교와 베이징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1925년 대구에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고, 1927년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 투옥된 것을 비롯하여

1929년 광주(光州)학생운동, 1930년 대구 격문사건(檄文事件)  등에 연루되어 

모두 17번에 걸쳐 옥고를 치렀다.

중국을 왕래하며 독립운동에 진력하다가 1943년 서울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송치된 뒤 1944년 베이징감옥에서 죽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잡지를 발간하고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사회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35년 30살이 넘어 시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1937년 서울에서 신석초(申石艸)·윤곤강(尹崑岡)·김광균(金光均) 등과

시동인지《자오선(子午線)》을 발간하고,

목가풍의 시 《청포도》 《교목(喬木)》 등을 발표, 상징주의적이면서도

호사한 시풍으로 일제강점기 민족의 비극을 노래하였다.

그의 시작세계는 《절정》에서 보인 저항적 주제와 《청포도》 등에 나타난

실향의식과 비애, 《 광야》 《꽃》에서 보인 초인의지와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유저로는 친지들에 의해 발간된 《육사시집(1946)》《광야(1971)》,

시와 산문을 총정리한《광야에서 부르리라(1981)》 《 이육사전집(1986)》 등이 있다.

1968년 안동에 육사 시비가 건립되었다

 

 

*  2024년 탄생 120주년이자 순국 8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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