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황유원-전국에 비, 지네의 밤

생게사부르 2016. 8. 20. 00:04

황유원


전국에 비


어둔방
창밖으로 들려오는 자욱한 빗소리 속에서
나는 기타를 치고
기타는 허공에
나무 한 그루 심어 놓는다
기타의 목질(木質)이 허공에서 축축히 젖어 가는 사이
나무는 비를 맞아 무럭무럭 자라나고
우리는 그 아래서 비를 그으며
젖은 머릴 말리며 다시
기타를 친다
내가 기타를 치면 참
평화롭다고 너는 말하지
나는 고작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틀렸는지나 생각 할 뿐인데 너는 그게
평화롭다고 말하고 진심으로 평화로워지지
나는 어리둥절해지고
내가 치고도 듣지 못한 음악을 너의 입으로 전해 듣고
서야
평화로워진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처럼


지네의 밤
- Massive Attack-


누구도 자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아주 멍청한 밤
일세

허물을 벗을 때마다 아주 길어지는 지네들이 기어다니는
아주 검고, 붉은!
빛나는 키틴질의 밤이란 말일세

어디선가 자네 마누라가 허물을 벗고 있을 아주 은밀한
밤이라고 말하면 자네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지네의 밤,
온 마디가 하나의 악절인
여러편의 악장이 이어진 교향곡이 방구석을 기어 다니
는 아주 웅장한 밤이란 생각이 들지, 않느냔 말일세

그 많은 다리가 고작 한 마리의 것이라니
그 많은 다리가 한꺼번에 움직일 때마다 와르르 연주되
는 음악은 썩, 훌륭하지 않은가! 이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