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풍습/황유원
루마니아 사람들은 죽기 전 누군가에게
이불과 베개와 담요를 물려준다고 한다
골고루 밴 살냄새로 푹 익어가는 침구류
단단히 개어 놓고 조금 울다가
그대로 간다는 풍습
죽은이의 침구류를 물려받은 사람은
팔자에 없던 불면까지 물려받게 된다고한다
꼭 루마니아 사람이 아니더라도
죽은이가 꾸다 버리고 간 꿈 냄샐 맡다 보면
너무 커져 버린 이불을, 이내 감당할 수 없는 밤은 오고
이불 속에서 불러들일 사람을 찾아 낯선 꿈 언저리를
간절히 떠돌게 된다는 소문
누구나 다 전생을 후생에
물려주고 가는 것이다, 물려줘선 안 될 것까지
그러므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이들 중 누군가는 분명
먼저 이불 속에 묻히고
이제는 몇 사람이나 품었을지 모르는
거의 사람의 냄새 풍기기 시작한 침구류를 가만히 쓰다듬다가
혼자서 이불을 덮고 잠드는 사람의 어둠
그걸 모두들 물려 받는다고 한다
언제부터 시작된 풍습인지
그걸 아무도 모른다
1982. 울산
2013. 문학동네 신인상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2015.12.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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