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공광규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생게사부르 2016. 8. 12. 13:55

공광규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얼굴표정과 걸친 옷이 제 각각인
논산 영주사 수백 나한
언제 무너져 덮칠지 모르는 바위 벼랑에
앉아
편안하게 햇볕 쬐고 있다
새소리 벌레소리 잡아먹는
스피커 염불 소리에 아랑곳 않고
지저분한 정화수 탓하지 않고
들쥐가 과일 파먹어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는다
다람쥐가 몸뚱이 타고 다녀도 아랑곳
않고
산새가 머리위에 똥을 깔겨도 그냥
웃는다
초파일 연등에 매달린 이름들
세파처럼 펄럭여도 가여워 않고
시주돈 많든 적든 상관 않는다
잿밥에 관심이 더한 스님도 꾸짓지
않는다
불륜 남여가 놀러와 합장해도 혼내지
않고
아이들 돌팔매에 고꾸라져도
누가 와서 제 자리에 앉혀줄 때까지
그 자세 그 모습이다
바람이 휙 지나다
하얀 산꽃잎 머리 위로 흩 뿌리면
그것이 한줌 바람인 줄만 알고...

들짐승과 날새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결 속에
화도 안내고 칭찬도 안하는
참 한심한 수백 나한들

나도 이 바람 속에서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         *           *

 

 

우리의 머릿속일지 마음속일지

하루에 원숭이가 오백번 널을 뛴다든가

잡념, 번뇌...

 

위 같이 한심하게 사는 일도 알차게 열심히 사는 일과 마찬가지로

어렵기는 매한가지이겠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1등 하기도 어렵지만 꼴지하기도 어렵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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