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에게, 나에게/ 임희숙
한 때는
온갖 빛나는 물고기와
바다의 맑은 세포까지
들여다 보았을 네 눈이
장남감 같이 아, 나는
불쌍하게 눈 뜨고 싶지 않아
조그만 생애와 그 슬픔의 무게가
젖은 행주에 묻어나고 사라지는
식탁 위에서
보드라왔을 아랫배, 맑게 비틀린
너처럼 너의 검은 똥처럼
낡은 비늘 사이로 풍기는
미칠 것 같은 비린내
바위 틈에 수초의 허리춤에
나를 숨기고
맑은 날 아침
누가 나를 찾아오거든
아직 바다의 깊은 곳을
떠다니고 있다고
시집 「격포에 비 내리다」
1958. 서울 출생
1991년 「시대문학」으로 활동 「내일의 시」 동인
택배를 출항시키다
오희옥
통영에서 수천 마리의 멸치 떼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종이 박스 모서리를 뚫고 출렁,
마룻바닥으로 쏟아졌다
멀미가 났을 것이다
해풍에 이마주름 말리시는 아버지
유자나무 열매에서도 지독한 비린내가 났다
내가 질색하며 뱉어버린 바다
토악질을 해도 늙지 않았다
해초에 몸을 감는 파도 따라
어망을 던지는 아버지
유자처럼 얼굴에 곰보자국이 선명했다
그때, 신음하는 물결
뜨겁게 할퀴어 찢기는 파도에
잘게 부서지는 아버지를 보았다
목이 늘어진 아버지의 바다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달팽이관 안에서 탁, 탁 그물 터는 소리
거실 바닥으로 좌르르 쏟아졌다
종일, 멀미가 났다
사진출처: 푸른시인학교 화요반 은행나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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