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심보선-영혼은 나무와 나무사이에

생게사부르 2016. 7. 2. 22:32

영혼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심보선

 

 

나를 다스리는 자는 나를 아끼는 자가 아니라
고독하게 하는 자, 먼곳을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는 자
죄의 얼룩이 아주 작게 보이는 곳으로
영혼을 최대한 멀리 던지는 자

두명의 나
한명은 죄인이고
다른 한명은 말이 없다
단지 태어나고 죽어갈 뿐인 나는
말 할수 있는 것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침묵은 나의 잘못, 그것이 나쁘고
슬프다는 것도 잘 안다

나는 자신없는 속삭임으로
속삭인다, 나의 수호천사는 어디 있을까요
내가 태어날 때 환호성을 외치다
구름이 기도를 막아 추락했나 봐요
불운이란 정오에는 살아 있었는데
자정에는 죽어 있다는 사실이 아니에요

살면서 나는 영혼을 여기저기 흩뿌린다

아무도 그것들을 끌어모아

다시 뭉쳐 놓을 수 없도록

밤의 이쪽 저쪽 낮의 구석구석에

나는 가끔 나무 두 그루 사이를 지나가고

그때마다 누군가 나에게 외친다

이야아아, 잠깐만 멈춰!

바로거기, 거기의 네가 참 맘에 드는구나!

 

침묵은 나의 잘못, 그것이 나쁘고

슬프다는 것도 잘 안다

영혼은 오로지 한 순간에만 눈에 뛴다는 사실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가는 새처럼

 

 

심보선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2011. 문학과 지성사

1970. 서울출생

 

 

*        *        *

 

장석주 "시적 순간"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재난 앞에서

 

정치는 공동체의 삶에 작동하는 역량들이다

그 역량들이 예측 할수 없는 것들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바꾸고

나날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범한 삶의 결들을 낳는다

 

정치가 고갈되고 자취를 감춘...만인의 안녕과 행복을 나 몰라라하는 지리멸렬한 정치

나쁜 정치는 지리멸렬한 위에 창궐하고, 악이 출현하고 활개를 치기에 좋은 토양이다

나쁜 정치는 현실을 악몽으로 바꾸고, 평범한 날들을 지옥의 날들로 몰아간다

 

이 세계는/혼자서 겪는 환상이 아니니까요(박판식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우아하게)

우리는 저마다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지만, 좀처럼 고통의 면역력은 생기지 않았다

누군가는 오열하고 누군가는 휘청거렸다.

" 살아 남은자들은 서로의 옷을 찢어질 듯 움켜쥔 채/ 말없이 오열하고/사는데 너무지쳐서/

 자신을 벼랑끝에서 밀어주기만을 바라는 자는/ 다리위의 가벼운 미풍에도 주저 앉을 듯 

휘청거"(박판식, 물벌레들의 하루)렸다

 

 

정치는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아니었다. 정치는 나를 소외시키고 고독하게 만든다

"죄의 얼룩이 아주 작게 보이는 것으로/ 영혼을 최대한 멀리 던"지며 그것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못한 잘못,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의 나쁜 존재방식을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죽음/기억없는 죽음, 무의미한 죽음"(인중을 긁적거리며)들이 더 많이 퍼졌다.

우리는 지리멸렬한 정치위로 흩뿌려지는 영혼들이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다

 

나쁜 정치는 징후적인데, 그 징후의 첫번째 국면이 재난이다.

 

* 2014.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두 해를 넘기도록 우리는 여전히 분노와 슬픔, 실의와 무력감, 우울증과 허탈함으로

집단적 트라우마에 빠져있다.

납득 할만큼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국민 대다수가 특조위 활동의 연장을 희망하고 있지만

정부는 강제종료 시키려 혈안이 되어있다

 

무고한 어린 생명들을 죽음의 바다로 밀어 넣은자는 누구인가?

사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비명횡사와 참사의 가능성, 위기 징후들을 예측 할수 있었지만

부패와 복지부동에 빠진 관료조직,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부권력, 돈을 신으로 섬기며 도덕적 해이에 빠진 사회, 

탐욕과 이기주의로 뭉친 몰이성적인 기업과 타락한 기업가들,

당리당략에 매인 정치 집단들은 그 사실을 외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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