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윤동주 삶과죽음외 3편

생게사부르 2015. 12. 1. 22:49

삶과 죽음/윤동주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 내리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 가기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 할 사이가 없었다

(나는 이것만을 알았다
이 노래의 끝을 맛본 이들은 자기만을 알고
다음 노래의 맛을 알려주지 아니 하였다)

하늘 복판에 알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 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는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차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흑룡강 조선민족 출판사. 2002

 

 

 

 

태초의 아침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날 밤에

그 전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 꽃과 함께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앓어 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게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도 한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雲石) 밑으로 홀러 걸어가는

슬픈 사랑의 뒷 모양이

거울 속에서 나타나온다.

 

 

감상:

 

따뜻한 인간애, 인도적 양심을 지닌 지식인, 감수성이 예민한 시인으로 살아가기에

그의 시대는 너무나 욕되고 절망적이었습니다

 

깊은 애정과 폭넓은 이해가 스며 있는 따스한 눈매, 입매가 그럴 수 없이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불행했던 시대의 시인,

어느 시대인들 시인이 시대에 아파하지 않은 적이 없겠지만 그의 시대는 직접 총을 들고 싸우러 나가서

시대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법외에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미 한계 지워진 어둠의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거부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치욕의 역사를 살 수 밖에 없는,

특히 글을 쓰는 시인으로서 느껴야 했을 개인적 무력감 ,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온 마음’으로 한 시대의 양심을 노래했던 그가

스물여덟의 아까운 나이에 생체실험의 모르모트로 이국땅에서 숨져가야 했던 그 부조리를 누가 책임질 수

있을지...

 

무엇으로도 보상 될 수 없는 그의 억울한 죽음 이후, 내가 그의 생에 마지막이었을 나이 즈음에는

분노와 슬픔을 거듭 반복하며 역사의 부조리함 시대의 불합리에 눈 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간 이후 칠십여년이 지나고 있고, 나 역시 인생의 2/3를 살아버린 이즈음도 여전히 그 분노와 애석함은

잘 가시지 않습니다.

인생을 통 털어 스물여덟밖에 살지 못했던 이가 무에 그리 부끄럽고 참회할 일이 많았다고...

 

한 시인의 시혼을 살려주지 못한 시대적인 부조리, 비록 시인은 갔지만

그 맑은 정신의 소유자가 남긴 결코 격하지 않은 잔잔한 시는 세대를 건너 뛰어 여전히

오늘 날의 우리들에게 많은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시대적인 혼탁함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의 양심의 소리,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또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 볼 것을 요구 하면서...

 

시인이 해방이후에도 살아 남아 다수 인간 일반이 살아내는 평생을 살았더라면

한 평생 정신적인 삶의 궤적을 어떻게 시로 그려냈을지 두고두고 궁금하고 아쉽습니다.

 

 

 

                            사진1. 중국 길림성 연변 용정 명동촌 윤동주 생가 시비

 

 

 

                                    사진 2. 용정 명동촌 윤동주 생가 앞에서

 

 

 

 

   

윤동주는 은진중학교를 다녔지만 구관 앞에 윤동주 <서시> 시비가 있고, 건물 2층에 사적전시관이 있으며

현재는 연변 6개 학교를 통합한 용정중학교가 앞 편에 있다.